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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명 지음│은행나무
유월절을 일주일 앞둔 예루살렘. 그 신성한 곳에서 끔찍한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범인은 성전을 더럽히고, 샘물을 피로 물들이고, 성전의 자리 곳곳을 살인현장으로 둔갑시킨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도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살인이 연이어진다. 점점 사건은 미궁으로 치닫고 살인자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예루살렘은 살인사건과 함께 곳곳에 악령이 출몰한다는 소문까지 퍼져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살인의 단서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향하고 있고 피살자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안 밀정 마티아스는 예수를 직접 찾아가기에 이른다. 하지만 눈앞에 대면한 예수는 자신이 그동안 의심하고 확증해온 살인자의 면모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등으로 역사와 소설을 절묘하게 결합한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 이정명 작가의 새 장편소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7일 동안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고대 예루살렘에 대한 역사 철학 종교적 지식을 바탕으로, 작가는 치열한 정치·종교의 헤게모니 각축장이었던 당시 예루살렘을 우리 앞에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형 집행을 앞둔 예수. 그 시대의 혼란함과 절박함을 상징화한 그 성스러운 순간을 연쇄살인이라는 소재를 부여해 소설적 상상력으로 불러들였다.
소설은 단순하게 '누가 죽였는가?'에 집중하면서 살인범을 쫓지 않는다. 살인이라는 소재와 당시 시대의 등장인물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원죄, 그리고 거룩한 희생과 구원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한다. 인류 역사를 바꾼 가장 중요한 순간, 연쇄 살인을 해결해나가는 또다른 살인자의 눈을 통해 예수와 그의 진실은 정치적 지형과 종교적인 색채로 만나게 된다. 범인이 사건 현장에 남겨둔 수수께끼들은 그동안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과도 이어진다. 작가가 보여주는 다면적인 시간의 결들은 현실에서의 선과 악, 죄와 벌, 용서와 구원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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