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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VS 80의 사회
리처드 리브스 지음│김승진 옮김│민음사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특권에 대한 짧은 이야기'라는 만화가 있다. 만화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와 그렇지 않은 가정의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나란히 보여준다. 한쪽은 부모의 도움으로 쾌적한 환경에서 안정적인 교육을 받고 추천을 통해 인턴 과정을 거쳐 성공한 젊은이로 주목받는다. 다른 한쪽은 좁고 습한 집에서 자주 아팠으며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은행권 대출을 거절당하고 어렵게 일자리를 구한다. 두 사람은 손님과 직원으로 한 연회장에서 스친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이는 자신이 아무것도 거저 받은 적이 없으며 늘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만화는 책 『20 vs 80의 사회』와 비슷한 점이 많다. 부모의 경제적 상황은 그들이 자녀에게 헌신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차이를 만들고, 이어서 교육여건이 좋은 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는지 여부를 가른다. 인턴십이나 고소득 일자리의 기회, 조세 제도 혜택 등 삶의 격차를 만드는 작지만 결정적인 차별이 계속 발생한다. 경제적 상위 20퍼센트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성공의 기회를 독차지해 자녀에게 물려준다. 애초에 제대로 된 경쟁 없이 상위 계층에만 기회가 주어지는 상황. 책에서는 '기회 사재기(opportunity hoarding)'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사재기에 의해 불공정하게 대물림된 소득과 부, 사회적 지위는 점차 불평등의 격차를 확대한다.
『20 VS 80의 사회』에서 저자는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편리한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유의미하게 분석하려면 '중상류층'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들은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80퍼센트 사이의 큰 격차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20 VS 80'이라는 불평등의 구조를 인지하고, 논의의 초점을 상위 20퍼센트인 중상류층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상류층은 기회를 사재기하며 '유리 바닥'을 만든다. 유리 바닥은 자녀 세대가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보호 수단을 일컫고자 저자가 제시한 용어로, 저자는 경직된 하향 이동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녀를 위해 유리 바닥을 깔아 주는 중상류층 부모들의 불공정한 행위가 불평등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원인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기회 사재기와 이러한 사재기로 인해 만들어진 유리 바닥은 세대를 거쳐 계급 간의 분리를 영속시키고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킨다.
고학력을 갖추고,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상류층은 표면적으로는 불평등을 맹렬하게 비판한다.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대결 구도를 만들고 최상위층인 슈퍼 리치에 대한 비판을 이끌었던 것 역시 중상류층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언행일치'의 차원에서 보면 이들의 태도는 이중적이며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배타적인 부동산 정책을 지지하며 인맥과 연줄을 통해 자녀에게 인턴 기회를 마련해 주고, 학비를 지원할 여력이 있으면서 장학금 혜택까지 차지한다. 앞에서는 재벌과 상위 1퍼센트 부자들을 비판하며 부동산 투기를 하고, 위장전입을 하면서 자녀에게 특권을 물려주려는 한국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의 모습을 떠올리기 어렵지 않은 책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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