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몸으로 부딪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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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몸으로 부딪치는 세상

- 영화 <엑시트>

  • 승인 2019-09-05 16:18
  • 신문게재 2019-09-06 11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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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젊은이가 철봉에 매달려 있습니다. 진지하기 그지없습니다. 앞으로 돌고, 뒤로 돌고, 옆으로 몸을 세웁니다. 카메라는 원 쇼트로 그를 길게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풍선 바람 빠지듯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면서 그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답지 않다는 표정들이 나타납니다. 동네 할머니들은 거의 혀를 차기 직전입니다. 젊은 사람이 벌건 대낮에 뭐 할 일이 없어 저런 짓을 하는가 하는 겁니다. 조카를 포함한 동네 아이들도 "저 사람 누구야?" "동네 바보 형이지 뭐." 하고 사라집니다.

그렇습니다. 영화에는 몸을 써서 안간힘을 다 하는 사람이 있고, 그걸 바라보는 사람, 뭐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용남과 의주는 독가스가 퍼진 거리와 건물들을 뛰고, 매달리고, 기어오르며 간신히, 간신히 사람들을 도와주고, 대피시키고, 자신들도 겨우 피합니다. 그리고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됩니다. 그 과정을 어떤 이는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또 많은 사람들은 휴대폰 카메라로, 드론 영상으로, 나아가 텔레비전 방송으로 봅니다. 처음에는 미친 짓 하지 말라며 비난하다가, 또 이상한 짓 한다며 비웃다가 나중에는 그저 안타까워 하며 애만 태웁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감격하며 고맙다고 고개를 조아립니다. 누구도 그들이 몸을 쓰는 상황에 참여하거나 개입하지 못합니다.

이 작품은 타인의 시선과 언어에 의해 위축된 젊은 남녀가 몸으로 주체성을 항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영웅이 아닙니다.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과는 너무도 다릅니다. 몸을 쓰고 줄을 쓰지만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몫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과 부딪칩니다. 영화는 평소에 그렇게 강해 보이던 언어와 시선들이 정작 위기의 순간에 무기력하고, 무책임할 따름임을 보여줍니다. 결국 생존이란 몸이 살아남는 것임을 알게 합니다. 젊은 그들이 온몸으로 부딪쳐 위기를 극복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저 바라볼 뿐이고, 말을 할 뿐입니다.

영화라는 것은 관찰과 시선의 산물입니다.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미지입니다. 그럼에도 가장 강렬한 것은 카메라 앞에서 선 존재들이 보여주는 몸의 움직임입니다. 그 운동성이야말로 살아있음의 극명한 표지입니다. <엑시트>는 외유내강이라는 제작사에서 만들었습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주먹이 운다>(2005), <베를린>(2012) 등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 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몸으로 세상에 부딪치는 사람들을 그려냅니다.



김선생의 시네레터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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