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하지만 프놈펜은 먼저 들른 씨앰립 같은 관광지와는 달랐다. 그곳 나름의 일상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도시라서 그랬을까, 여하간 이방인으로서의 경계심을 좀 더 자극하였다. 자동차와 세 바퀴 달린 오토바이 릭샤가 뒤섞여 달리는 거리에서 길이라도 건너려면 저절로 친구의 손을 꼭 잡게 되는 두려움이 낯섦을 더 부추겼는지도 모르겠다.
주말을 맞아 우리 친구 셋이 찾은 곳은 킬링필드였다. 프놈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청아익이라는 곳이었는데, 킬링필드는 1975~1979년 사이 공산주의 크메르루즈 정권이 사람들을 학살하고 마구잡이로 묻어버린 매장지로 캄보디아 곳곳에 2만여 개에 이른다고 하였다. 오래전 킬링필드라는 영화를 충격적으로 보았던 기억도 났다. 가벼울 수 없는 마음으로 방문했는데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한층 스산해지던 마음에 안내소 사람들이 들고 와서 나누어주는 우산이 작은 위로가 됐다.
하늘이 잔뜩 어두워지며 빗줄기가 제법 사나워지는 가운데, 우리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걷기 시작했다. 나지막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일련번호가 붙은 관람 경로를 하나씩 안내하였다. 새 세상을 표방하며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만행이 시작되었고 당하는 이들의 공포와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설명했다. 크메르 루즈에 맞서는 반혁명적인 사회적 지도자나 스파이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죽인다는 것이었지만 안경을 꼈다고, 손이 곱다고, 얼굴이 하얗다고, 시계를 찼다고 잡아가고, 여자나 어린 아기들까지도 죽이는 무차별적인 처참한 학살이었다고 한다. 그 수가 정확지는 않지만 인구의 3분의 1 혹은 4분의 1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코스는 그곳에서 발굴된 유해들을 보존해둔 위령탑이었다. 차마 들어갈 수가 없어서 영혼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헌화만 하였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위령탑에 대한 오디오 가이드의 마지막 설명이 먹먹한 마음에 스며들었다.
위령탑의 지붕 끝은 캄보디아 사원이나 왕궁에서 볼 수 있듯이 뱀의 형상으로 장식돼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앙코르와트에서 머리가 7개 달린 나가(Naga)라는 뱀에 대해 들었다. 나가는 악령과 싸우며 대제국을 지배하는 위력을 가진 수호자로 인도의 왕자가 나가 왕의 딸과 결혼하면서 캄보디아가 생겨났다고 했던가. 사원 곳곳에서 보았던 뱀의 형상이 이곳에서도 눈에 들어온다. 또 하나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위령탑 지붕 가운데에 가루다(Garuda)가 새겨져 있다. 가루다 역시 신화 속 동물로 독수리의 얼굴에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비슈누 신이 타고 다니는데 나가의 천적이라고 한다. 나가가 가루다의 어머니를 잡아먹어서 서로 원수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게 서로를 원수로 아는 나가와 가루다가 함께 있을 때가 진정한 평화라고 가이드는 강조하였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서로 다른 것이 함께 하며 조화를 이룰 때, 균형을 유지할 때 최고의 풍요로움과 평화를 이룰 것이다. 크메르루즈가 자기들에게 반대하는 지식층을 제거한 것은 캄보디아의 절반을 자른 것이고 결국 캄보디아의 오늘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메콩 델타에 위치한 캄보디아는 식량이 풍부해 6.25 전쟁 때 우리에게 쌀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가난한 나라로 심한 부정부패 속에 옛 크메르왕국의 유산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왕년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프놈펜의 왕궁에서 본 크메르 노래말은 이렇게 적고 있었다. "크메르인들이여, 영광스럽고 풍요로웠던 역사를 기억하고 또 다시 온 힘을 다해 크메르의 가치를 드높이라" 고.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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