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섭 교수 |
도심 곳곳마다 크고 작은 공원이 많기로 유명한 런던과 파리도 19세기 까지만 하더라도 과밀과 불결함으로 넘쳐나던 도시였다. 비위생적 도시공간은 전염병 창궐과 삭막한 정신에서 비롯되는 각종 범죄를 양산했고, 이에 대한 치유책의 한 방편으로 등장한 것이 도시 곳곳마다 크고 작은 공원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일이었다. 시간과 함께 근린공원은 지역 생활권 핵심 활동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주변 공간구조까지 공원중심으로 재편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법적으로 할당된 공원을 우리는 실생활에서 잘 체험하지 못하고 산다. 찾아 활용하지 못하는 우리도 문제이지만 찾아 쓰기 어렵게 설계된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공원을 계획하는 사람이 이용할 사람의 특성을 면밀히 살피지 못하고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산술적으로 배치하던 것이 과거의 도시설계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주택가와 큰 도로로 분리된 공원이라던 지 생활권보다는 상징축 구성 등 관념적 설계방법에 따른 배치 또는 인근 주민의 이용특성과 동떨어진 생뚱맞은 시설은 이러한 관행의 결과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롭게 만드는 도시라면 앞서 지적한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어 잘 설계하면 되겠지만 이미 만들어진 공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이다. 결국, 고쳐 사용할 수밖에 없다. 공원을 둘러싼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이용자들의 특성과 이용 패턴을 파악하여 불편한 내용은 바꾸며, 이용대상을 조정해야 할 경우에는 이에 맞게 전면적인 재설계와 시공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차제에 공원의 유형과 설치기준도 손질할 필요도 있다. 법적 기준에만 맞게 설치된 어린이 공원의 경우 주변 지역의 인구 구성이 젊은 부부 중심에서 노인층으로 바뀐 지역이 있다면 이용대상을 고려해 공원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 보행 약자에 해당하는 어린이를 위해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설치되는 어린이공원은 마찬가지 이유로 노인을 위한 공원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노인이 많이 사는 지역 도로 바닥에 어린이보호 대신 노인보호 노면 표시가 등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주거지역과 동떨어져 설치된 공원은 지역주민보다는 새로운 공원이용 수요를 창출할 수 있도록 풋살장 등 테마형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자칫 특정계층에 의해 독점되는 상황도 벌어지기 때문에 이용 독점권을 경계해야 한다. 공공청사 주변 공원은 열린 공원으로 거듭나야 한다. 시설의 보안을 위해서라지만 사실 권위의식이 여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간혹 일어나는 보안사고와 매일 장사진을 치고 있는 시위대를 보노라면 높은 철책을 설치한 배경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나, 보안은 다른 방법들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주민의 입장에서도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다. 공간이 내 것이라고 인식하면 아끼고 가꾸는데 열심이지만, 거저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면 훼손하고 더럽히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행태도 바뀌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내 공원 갖기 운동'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가끔 동네공원 한편에 '이 공원은 OO 단체에서 봉사하는 곳'이라는 팻말과 함께 주기적인 청소와 관리를 담당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관리관청은 생활권 공원을 이용하는 주민조직을 관리자로 지정해 줄 필요가 있다. 내가 사는 집에서 가까운 즐겨 찾는 공원을 내 공원으로 인식하여 자주 방문하고 정을 들이며 훼손으로부터 적극 개입하는 노력을 주민운동으로 차원으로 추진해보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될 것이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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