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약자를 위한 횡단보도 보행 시간이 27년 전 기준이 그대로 적용된 탓이다.
1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288건이다. 연도별로 보면 2015년 293건, 2016년 336건, 2017년 313건, 2018년 346건으로 매년 꾸준하다. 교통사고 대상자가 노인이라는 점에서 사망도 속출한다. 2015년과 2016년, 2017년 각 22명씩 사망했으며, 지난해는 24명의 노인이 보행하다 숨을 거뒀다.
부상·사망자가 속출하자 교통약자를 위한 횡단보도 녹색 신호시간 책정기준이 현실에 맞게 조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 횡단보도 녹색 신호시간 책정기준은 일반인 보행속도는 1m/s다. 반면, 노인 등 교통약자를 위한 보행속도는 0.8m/s다. 1m/s는 1초에 1m를 이동하는 속도를 뜻한다. 노인은 초당 0.8m 걷는다고 규정해놓았다.
이 속도는 27년 전인 1992년 만들어진 책정 기준이다. 도로교통안전협회가 횡단보도 보행자의 횡단특성에 관한 연구 결과로 만들어졌다. 조사 대상은 지역을 세분화한 게 아닌 서울 20개 교차로에 국한됐다.
이처럼 27년 전 책정된 체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결과는 최근 카이스트에서 발표한 보행속도를 보면 수긍이 간다.
연구팀이 지역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 1348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남성 노인 602명 중 하위 4분의 1은 보행속도가 0.663m/s다. 여성 노인 736명 중 하위 노인 4분의 1은 0.545m/s다. 우리나라 기준에 맞춘 노인 보행속도 0.8m/s보다 한 참 못 미치는 수치다.
다시 말해 1초에 0.8m를 갈 수 있다고 기준치엔 설정해놨지만, 남성 노인은 0.6m를, 여성 노인은 0.5m를 간다는 말이다. 보행 신호 구간을 이동하기 전에 적색 신호로 바뀐다. 때문에 노화로 다리가 불편한 노인들은 보행 신호 70~80%에서 신호 대기 중인 차량의 경적 소리를 듣는다. 노인보행 속도 현황 파악과 조사로 속도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전경찰청 관계자는 "대전 일부 구간 주행속도를 60km/h에서 50km/h로 하향 조정하는 등 시범운행을 하고 있다"며 "녹색 신호도 도로교통공단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원기 기자 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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