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소박한 일상으로 이룬 고귀한 찬미… 네루다의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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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박한 일상으로 이룬 고귀한 찬미… 네루다의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김현균 옮김│민음사

  • 승인 2019-08-22 10:49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너를닫을때나는삶을연다
 민음사 제공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김현균 옮김│민음사



책이여,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항구에서 들려오는

간헐적인 외침에

귀를 기울인다.

― 「책을 기리는 노래 1」 중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블로 네루다는 '문학 투사'와 '서정과 순수'의 시인이라는 평을 동시에 받는 작가다. 그가 평생에 걸쳐 남긴 2500여 편의 시는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주체와 객체, 역사와 신화, 부드러움과 단호함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유연함을 가졌다. 국내에서 처음 완역된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기본적인 송가(Odas Elementales)』는 민중의 삶을 향하면서도 '단순한 언어의 미학'으로 높은 예술성을 달성한 네루다 후기 시 미학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표작이다.

네루다에게 시는 모두가 함께 나누는 빵 같은 것이었고, 최고의 시인은 모두에게 일용할 빵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옷과 토마토, 양파 등의 소박한 일상 사물에서부터 기쁨과 슬픔, 질투와 평온 등의 감정, 여름과 비, 숫자, 게으름 등,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이 그의 시가 됐다. 지역 일간신문에 연재된 시들은 그의 요청에 따라 문예면이 아닌 뉴스면에 실렸다.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읊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듯 다양한 독자들과 호흡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집의 부제 속 '송가'는 고대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에 의해 그 원형이 확립된 서정시의 형식을 일컫는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시대, 권력자 혹은 승리자의 고귀함을 찬미하는 웅장한 장시의 전통을 이어온 영웅적 형식이다. 네루다는 소박한 것들을 그 칭송의 대상으로 삼는 파격을 보여준다. 이는 시의 엄숙함과 권위를 탈피하고 일상을 숭고한 차원으로 격상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대중 독자의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 낸 이 시집은, 공공의 책무를 지닌 노동자로서의 시인이라는 정체성과 사회주의 리얼리즘도 담고 있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과 경제적 수탈을 비판하고, 정치적 폭력에 항거하는 색채가 분명한 시들을 예로 들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시들 역시 정치적 구호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민중을 향해 흘러들 수 있도록 썼다. 네루다가 구축한 근원적 휴머니즘의 시세계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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