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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식 지음│민음사
해방됐다는 소문이 들려온 1945년. 만주 이곳저곳을 떠돌던 조선인들이 조선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기 위해 잠시 전재민 구제소에 머문다. 일본군 위안소에서 능욕의 세월을 견딘 명숙과 미즈코는 과거를 숨긴 채 구제소로 숨어들고, 함께 가자는 미즈코를 떨쳐 내지 못한 명숙은 미즈코를 벙어리 동생으로 속여 자매 행세를 한다. 가난, 전염병, 중국인들의 핍박으로 전전긍긍하던 그들의 손에 드디어 조선행 기차표가 주어지지만 명숙과 미즈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극작가 배삼식이 식민지 시대의 절망과 혼란을 담은 작품 2편을 모았다. 2017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한 뒤 그해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한 「1945」이 표제작이다. 한 번도 중심을 향했던 적 없는 배삼식의 시선은 이번에, 중심을 만들기 위해 골몰했던 해방 이후의 역사를 향한다. '해방은 되었으나 제대로 해방되지 못한 국외의 전재민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아귀다툼하는, 어쩌면 전쟁보다 더 무섭고 혼란스러운 전쟁 이후(권여선 소설가)'를 조명해, 역사의 뒤안길 속 인간 군상을 비추고 생의 감각을 결여한 역사의 공백을 복원한다.
공인된 역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개인의 욕망을 통해 1945년이란 시간을 다시 쓰고자 하는 것은 작가의 가장 큰 목표였다. "선입견,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인간들의 구체적인 의지, 삶을 향한 욕망, 도덕적 윤리적 판단 너머에 있는 삶의 모습을 충실하게, 치우침 없이 그려 보고자 했다. 중심인물은 있겠지만 작은 역할 하나라도 저에게는 다 소중하다. 비열해 보여도 제각각의 지옥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가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은 역사의 맨얼굴을 마주하는 의미도 크겠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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