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만 보던 해수욕장 가는 것이 학창시절 꿈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친구 몇 명과 대천해수욕장에 가기로 했다. 어린 시골뜨기들이 여행 장비를 잘 갖추었을 리 만무하다. A텐트 하나, 수영복과 먹거리가 전부였다.
요즈음도 외진 마을을 연결하는 마을버스가 운행된다. 예전에는 가까운 마을과 마을을 잇는 작은 버스가 있었다. 그나마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나 정차한다. 마을 어귀에 모여 버스 타는 넓은 길까지 2km 정도 걸어야 한다. 아무렴 어떠하랴 발걸음도 가볍다. 큼직한 자갈이 깔린 비포장도로,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정차한다. 버스는 이미 만원이다. 창문도 윗 문도 다 열려있다. 털털거리고 기우뚱거린다. 이리저리 쏠리며 논산에 도착한다. 정류장에서 부여 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보령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 1995년 보령군과 대천시가 통합되어 보령시로 바뀐다. 그 이전이라 대천시가 맞을 것 같다. 해수욕장까지 작은 버스로 이동한다. 고불고불한 비포장도로를 달리자니 속도가 빠를 수 있겠는가? 정류장마다 구간 버스 운행이 자주 있지도 않았다. 지금 같으면 시간 반이면 족히 갈 거리다. 오전에 서둘러 출발하여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다.
야릇한 불빛이 요란스레 난무하고, 바다 내음이 코를 후빈다. 반라의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인다. 야단법석이다. 바다 쪽으로 향하니, 백사장 여기저기 모닥불이 타오른다. 그러고 보니 당시엔 고고 춤, 야외전축이 유행이었다. 수영복 차림으로 흔들어 대는 인영들과 더불어 모닥불도 함께 막춤을 춘다. 악기가 특별히 있는 것도 아니다. 소리가 나는 것이면 모두가 악기다. 두드리면 음악이 된다. 미지의 세계로부터 출렁이며 달려온 바다, 철석! 철석! 지친 몸을 모래톱에 누인다. 번갈아 가며 쉬지도 않고 부서지는 하얀 물보라. 잠 못 드는 기러기도 드문드문 불빛에 모습을 드러낸다. 존재를 인식 시키려는 듯 흰 배를 살짝 보이고 사라진다. 모두가 처음 보는 경이로운 풍광이다. 놀란 가슴이 벅차오른다.
텐트 칠만한 빈자리를 먼저 온 사람이 알려 준다. 어둠속에서 텐트를 치고 바다로 향한다. 완만한 경사가 꽤 길게 자리하고 있다. 바닷물에 먼저 뛰어들어 본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바다와 사람이 어우러져 희희낙락이다. 백사장은 조개껍질이 잘게 부서져 모래와 섞여있다. 발바닥에 와 닿는 느낌이 참 좋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이라 익히 들어 안다. 달라붙지 않고 쉽게 떨어지는 장점이 있다. 여타 소리들이 먼저 잠이 들고, 파도 소리에 맞추어 뒤척이다 얼핏 눈을 붙인다.
이튿날 보니 백사장 상단 가득 어깨를 맞댄 텐트가 촌락을 이루고 있다. 5박 6일 동안 해수욕장 인근을 이리저리 돌아보고 각종 놀이를 하며 지냈다. 남쪽에 자리한 기암괴석과 그 바위에 하얗게 달라붙은 생명체들이 인상적이었다. 돌로 굴 껍질을 두드려 꺼낸 속살의 짭쪼름한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언덕위의 솔 숲, 멀리 펼쳐진 섬들의 속삭임 위로, 저녁 무렵이면 펼쳐지는 낙조 또한 장관이다.
그 이후 여러 차례 대천해수욕장을 찾았다. 겨울 바다와 음식 관광, 수련회, 피서 등 이유도 다양하다. 해변 가의 조각공원을 비롯해서 많은 문화시설과 유락시설이 들어섰다. 머드축제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축제휴양관광지가 되어 가고 있다.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잘 정돈된 시설물들과 편의시설이 쾌적한 휴식을 돕는다.
행사에 초대받아 대천에 갔다. 분수광장에서 공연이 있다. 시작 전에 해수욕장을 둘러본다. 노을이 점점 짙어지는 늦은 시간이라서 일까? 어느새 해수욕장은 한산하다. 물속엔 사람이 거의 없고, 서성이는 사람, 오가는 사람들로 백사장만 부산하다. 모래사장, 솔 숲, 갈매기, 파도 소리는 여전하다. 불현듯 생생하게 옛 모습이 떠올라 그려 보았다.
인근에 사는 친구 부부가 찾아왔다. 행사 끝나고, 대전에서 간 일행과 함께 분수광장 옆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다. 중요한 일만 없었으면 밤새 함께했을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새벽 3:30 카페를 나와 대전까지 달렸다. 대전까지 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카페 주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주문한 맥주와 과일을 내오고, 조금 지나서 접근을 시도했다. 16년 전에 대천에 놀러 왔다, 이곳이 너무 좋아 정착하게 되었단다. 대천 자랑을 늘어놓는다. 자신이 직접 만든 물건이라며 천연비누를 비롯하여 몇 가지 수제품을 나누어 준다. 자세한 설명도 덧붙였다. 아무나 말을 붙이진 않는다고 했다. 무심코 자기 가게에 찾아 온 사람 중, 지속적으로 관계유지 하는 사람이 전국에 400여명 된다 했다. 종일 문을 여는 것은 아니란다. 사전 연락을 주고, 지나는 길에도 들리고, 행사를 만들어 오고, 수시로 찾아온단다. 그 스스로 다시 오고 싶은 명소로 만든 것이다.
보령시는 연간 1천만 여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자랑이다. 외지사람과 주민이 사시절 찾아 즐길 수 있는 관광명소로 만드는데 있는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해수욕장은 여름 한철 성수기란 단점이 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는데 작지만 큰 힘을 보태는 것이 주민이란 생각이 들었다. 관광사업 활성화,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들 몫은 아닐까? 하나 되고 미래지향적인 주민의 문화마인드와 역할이 더 크지 않을까?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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