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제공 |
대학 때 TV에서 '베스트극장'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단막극으로 국내 소설을 각색해 드라마화해 시청률이 높았다. 한번은 양귀자의 '한계령'이 방영됐다. 소설가인 주인공은 고향 친구 은자가 있다. 주인공의 추억의 중심에 있는 친구 은자. 어느날 은자는 전화를 걸어 가수가 됐다며 나이트 클럽으로 오라고 한다. 은자는 어렸을 적부터 노래를 잘해 주인공 앞에서 멋들어지게 유행가를 부르곤 했다. 망설이다 결국 클럽으로 찾아간다. 은자일 지 모르는 여가수가 양희은의 '한계령'을 부른다. 주인공은 복잡한 심사에 '한계령'을 부르는 친구 은자일지 모르는 가수를 보며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배우의 눈에 고이는 눈물. 고향에 대한 쓸쓸한 추억과 가족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어우러져 주인공은 은자를 만나지 않고 나온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10여년 전 강원도에 여행 갔을 때 한계령을 지나갔다. 여름이었다. 가랑비가 온 뒤의 한계령 아래는 안개 같은 구름이 걸려 있었다. 여행의 정서와 노래의 이미지가 겹쳐 괜시리 쓸쓸한 감정이 내 가슴을 눌렀다. 커피를 마시며 왁자지껄한 여행자들의 얘기소리를 피해 한적한 곳으로 갔다. 한 여름의 설악산은 가파른 산세를 드러내며 낯선 이방인을 밀어내는 듯 했다. 인생의 여행지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낯섦과 익숙함의 경계. 삶의 도피가 과연 나의 이상일까. 이방인의 설렘은 언제까지일까. 구름처럼 사는 길 위의 인생을 꿈꾸지 말라고 '한계령'은 꾸짖는다.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우난순 기자 rain418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