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선조들은 딸 낳으면 울안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한다. 원줄기를 잘라주면 줄기가 새로 돋는데, 그를 자동(子桐)이라 하고, 한 번 더 잘라주어 돋는 줄기를 손동(孫桐)이라 한다. 손동이 가장 질 좋은 목재가 된다. 고이 기른 여식이 시집가게 되면 오동나무를 벤다. 목수 드려 각종 가구를 만들어 주었단다. 지금이야 자녀를 위해 오동을 심는 경우는 흔치 않겠지만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나무이다.
김득신의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 25.3 × 22.8㎝, 개인소장)를 보자. 잘 사용하지 않는 파격적인 구도다. 대담하게 한가운데에 오동나무를 우뚝 세웠다. 화면이 양분된다. 양분된 화면을 하나로 엮어내는 교묘한 수법이 탁월하다. 넓은 잎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이도 거꾸로다. 절로 무게를 느끼게 한다. 모두 탈속의 경고 같다. 그 아래 개가 앉아 둥근 달을 올려다보며 짖어댄다. 잘 사는 집이 아닌 듯, 초가 가까이 작은 나무가 담장을 대신한다. 앞쪽으론 울타리다. 채근에 못 이겨, 누워있던 아이가 사립문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잠옷 바람이다. 개 짖는 소리 외엔 휘황한 달빛만 고고하다. 다소 거칠게 표현했으나 달밤의 운치가 그대로 담겨있다. 아이는 잠도 잊고 울타리에 의지한 채 달빛에 젖는다.
시골에 살아 본 사람은 안다. 어쩌다 스치는 소슬바람에 흔들리는 오동잎, 잎이 떨어지는 소리, 열매가 살 부딪는 소리를 내면 놀란 개가 짖는다. 한 마리가 짖게 되면 옆집 개가 따라 짓고, 급기야 온 동네 개가 영문도 모르고 함께 짓는다. 어른들은 알면서, 혹여 밤손님이라도 온 것일까 헛기침하기도 하고 내다 보기도 한다. 개를 안심시키는 호응이기도 했으리라. 겁많은 개가 호들갑이다. 사나운 개는 짖지 않는다. 몰래 다가가 덥석 물고 늘어진다.
이 그림은 아무래도 중간에 쓴 화제畵題에 눈길이 간다. "一犬吠 二犬吠 萬犬從此一犬吠 呼童出門看 月卦梧桐第一枝.(개 한 마리가 짖네, 두 마리가 짖네, 만 마리 개가 이 한 마리 개를 따라 짖네, 아이 불러 문밖에 나가 살피라 했더니, 달이 오동나무 제일 높은 가지에 걸려 있네)".
이 이야기는 "개 한 마리가 그림자 보고 짖으면 수많은 개가 소리 듣고 짖는다. 一犬吠形 百犬吠聲"는 고사성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왕부(王符, ? ~ 162, 중국 후한의 철학가)의 『잠부론潛夫論』〈현난賢難〉에 나오는 속담에서 유래 됐다. 내용이 대단히 길다. 현난은 어진 사람 얻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한 사람이 헛된 말을 꾸며서 퍼뜨리면 다른 사람이 그를 사실로 알고 퍼트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거짓의 병폐, 들리는 소리만 좇다가 과오를 저지르고 사회를 도탄에 빠트린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 25.3 x 22.8 cm, 서울 개인소장,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
왠지 요즘 우리 사회를 적나라하게 풍자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SNS 시대의 가장 큰 장점이요 단점이다.
나라가 총체적 난국이다. 진정으로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학계의 자발적 기술자문 등 바람직한 움직임도 보인다. 이성적 방향 제시도 있다. 정작 정부는 이렇다 할 해법이 없는 듯하다.
아무 노력 없이 해놓은 합의는 모두 깨고, 준비나 대응 없이 외면하고 있다 불거진 잘못은 남 탓으로 돌린다. 감성팔이로 선동질만 하다가, 해법이라고 내놓은 것이 평화경제다. 먹고 살기도 급급한 북한과 협력하여 일본을 이기겠단다. 기술력 차이를 선언만으로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인가? 기업활동, 생산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기나 하는지? 뜻 모르는 미사여구로 혹세무민(惑世誣民), 21세기 대명천지에 아무런 대책 없이 이웃과 싸우자고 한다. 외교는 냉철해야 한다.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뜻을 함께할 국가가 있기나 한가? 외교전을 펼치겠다는 말도 공허하기만 하다. 일반인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울분과 격정을 토로할 수 있다. 국정 책임자가 할 일은 아니다. 그와 부화뇌동하여 따라 짖는 자들은 무엇인가?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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