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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물을 베는 일은 쉽기는 한데 잘라지지 않는다는 것,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의 일이 선명하게 투명하게 무를 자르듯이 딱 잘라져 옳고 그름이 판정되고 결정되는 아닙니다만 어느 정도 해결의 선은 있어야 합니다.
선이 없이 서로 맞지 않는 상태로 오랫동안 말다툼을 하는 경우에 마음에 병이 생깁니다.
2018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연구팀이 '부부의 말다툼이 오래 이어지는 경우 만성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무릎 관절환자와 배우자, 당뇨 환자와 배우자가 실험 참가자들이었습니다. 연구 기간 동안 실험 참가자들로 하여금 기분, 증상의 심각성, 배우자와의 긍정, 부정 상호작용에 대해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실험 결과 부부의 갈등은 질환이 있는 배우자의 증상이 악화되고 통증이 심해지는 것을 알아내고 부부 싸움이 건강과 상관성이 이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남편과 말다툼을 했습니다. 저는 평화주의 유형으로 말다툼 자체가 힘들어 회피하는 편이고 칼로 물베기로 좋게 넘어가는 편인데, 같은 문제가 평생 반복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끔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둘러 기차를 타러 나가는 짧은 시간이었기에 서로 화를 내고 소리 지르는 시간도 짧았지만 스트레스 수치는 최악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기분이 쉽게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다행이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출장이었기에 그 사람에게 남편과 싸운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에 꽁꽁 묶어두지 않고 풀어놓으면 어느 정도는 해결되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순해졌을 때 남편에게 '기차 시간에 쫓겨 여유가 없어서 부드러운 대화를 하지 못했다, 미안하다'라는 문자를 남겼고 저 스스로 너그러워졌습니다.
중년 여성의 사례입니다. 별 이유 없이 매일 부부 싸움을 하는 여성은 관절염을 심하게 앓고 있었고 남편은 고혈압과 당뇨 환자였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는 것을 알아주지 않아 짜증을 내다가 그것이 불씨가 되어 다툼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어느 날 부인은 라디오에서 '관절염은 스트레스에서 온다,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관절염도 사라진다'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상담을 하면서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연구 팀의 이야기도 접하게 되었고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부부싸움을 줄였습니다. 일단, 목소리를 낮췄고 한 번을 더 생각하고 말했으며 부정적인 말을 안 하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다름을 인정했고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으며 상대의 말이 맞음도 바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관절염이 거의 사라졌으며 정신 건강도 좋아지는 효과를 거뒀고 부부 사이도 아주 친밀해졌습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음으로 우울증이나 심리적 합병증 및 신체화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 사이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생각과 행동을 인정해주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물을 억지로 칼로 자르려하지 말고, 무조건 화내지 말고, 그냥 덮으려하지 말고 진정성 있는 대화로 잘 풀어나가길 바랍니다.
김종진 여락인성심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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