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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시적 열정과 재능을 개인의 세속적 영달을 위해 소진한 어리적은 시인 서정주. "자신을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었다", "아비는 종이었다"고 고백한 시인이 어째서 숭고한 시의 가치를 헌신짝 버리듯 하며 일제에 부역하고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에 빌붙어 기생하며 목숨을 부지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분별력 없고 비굴한 노인. 서정주는 추한 시인이었다. 전두환 생일에 아부의 침을 발라 헌사한 저급한 시는 시인의 문학성을 한낱 시궁창의 쓰레기였다.
이 시 '신부'의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오해로 신부를 불귀의 객으로 만든 첫날 밤 신랑같은 시인. 음탕한 신부라고 내쳐진 신부의 슬픈 운명은 남자들의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만들었다. 억울함과 한으로 첫날 밤 족두리에 다홍치마에 초록 저고리를 입은 채 죽어버린 신부의 원혼이 신랑의 어루만짐으로 비로소 산화됐다. 초록 재와 다홍 재. 슬프고도 섬뜩한 이미지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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