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
인간의 현 존재와 삶의 상태 자체를 있는 그대로 영화화하려는, 메시지 부재의 의지는 홍상수의 고질적 화두다. 그에게 영화의 메시지 같은 건 없는 게 낫다. 깔대기처럼 모아놓은 주제의식이 싫단다. 인물의 선악 구도나 행위 및 사건 간 인과율 등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그가 주로 취하는 방법은 과거, 현재, 미래가 인과적으로 연결된 전형적 플롯을 제거하는 일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조건들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보다 나은 이상적 전망을 영화의 교훈적 결론으로 뽑아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관습적 시간인식도 거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저 유명한 <시학>에서 말하는 도덕적 딜레마의 해결과도 거리가 있다.
길을 가다 빈 우유팩을 발견한다(<옥희의 영화>). 그 우유팩이 공교롭게도 마침 거기 놓인 우연에는, 누군가의 아무런 의도가 없다. 대신에 우주의 신비가 숨어있다. 우유팩과 마주쳐 우유팩 그림을 그렸을 뿐인 홍상수는, 랜덤의 타자와 마주치는 순간의 느낌대로 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이를테면 무의도의 의도를 실행한다. 오래 살아온 집, 얽히고설킨 가족관계에서 아예 동떨어진 장소에다가 배우/인물들을 떨구어놓고 영화라는 형식 게임을 가동시키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시간을 새로 구성하기 위한 공간의 활용이다.
<다른 나라에서>의 경우에는 제목부터 타국의 장소성을 드러낸다. 한편 인물에게 비교적 가깝고 친숙한 곳조차, 과거 인연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긴 해도, 어쨌든 대체로 산책이나 만남의 장소로 기능한다. 그러다 보니 인물의 과거사에 대한 전제적 설명을 구구절절 해댈 필요가 없다. 영화는 분명 리얼한 일상을 다루는 듯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행과 같이, 집과 가족관계를 벗어난 실험적 일상인 것이다.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이유있는' 사연을 구비구비 품은 캐릭터를 상정하지 않고자 제천, 제주, 통영, 북촌, 창경궁 등을 지나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이르러서는 "미디어에서 가장 살기좋은 곳으로 선정된 서구 어딘가와 강원도 어딘가" 정도의 대사로 거론되는 '무명의 장소'까지 간다. 그리고는 또 한 번 GTA 식의 여행지 내지 산책로 체험에 인물들을 참여시킨다. 물론 이번에도 목적지/메시지는 없는 여행이다.
홍상수의 장소들은 그게 어디든 상관없는 장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장소들을 여행자 내지 산책자의 신선한 시선으로 더 매력적이게 담아낼 수 있다는 반가운 역설도 종종 발생한다. 무의미의 세계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 언어의 고유한 기능이라면, 특정한 텍스트가 지니는 무목적의 목적, 무의미의 의미를 알아채는 것도 평론가의 일일 것이다. "모르고 봐야 더 좋다"(<하하하>의 김상경 대사)는 홍상수 본인은 "알고보면 더 재밌다"는 이런 글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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