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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이라는 단어를 듣고 남성의 몸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큰 의심 없이 '유방'은 여성의 신체로 인지되곤 한다. 남성의 유방이란 이미지가 얼른 떠오르지도, 잘 유통되지도 않는다. 사실 '유방'뿐 아니라 '가슴'이라는 단어를 쓸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 유방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 여성 유방의 '융기된 부분'은 '차이'로 인해 생식 활동을 유도하는 '유혹'의 기관으로, 미적인 평가 대상으로 평가받기 일쑤다. '여성의 가슴은 성性적'이라는 명제는 오랫동안 의심되지 않아 왔고, 여전히 일각에서는 의심하지 않는 명제 중 하나다. 그러나 반대로 이 전제에 대해 의심하거나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책 『성스러운 유방사』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물이다. '유방문화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각 분야 연구자 스물두 명이 "여성의 가슴은 정말 성적인가?", 혹은 "'유방'이 여성만의 기관일까?" 같은 질문을 던지며 10년을 골몰했다. 고대 문학과 예술부터 근대와 오늘날의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잡지, 포스터, 공공미술과 문신 도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매체를 살피고 여러 나라를 직접 답사했다. 이들은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가슴이 이야기가 있다"는, 다수에게 익숙한 젖 먹이는 성스러운 가슴, 성적으로 유혹하는 가슴 외에도 수없이 많은 가슴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근래 들어 눈에 띄게 회자되는 한 가지 이슈가 바로 '노브라'다. 2018년 "여성의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라는 구호로 페이스북 사옥 앞에서 상의 탈의 시위를 벌인 여성단체로부터 시작된 '탈브라' 논의에 더해 최근에는 여성 연예인들의 '노브라'가 한창 화젯거리였다. '노브라' 라는 개인적 결정에 반대하는 논리는 '매너'로 압축된다. 집에서야 브래지어를 입든 벗든 자유지만 공공장소에서는 반드시 착용하는 것이 사회 상규에 부합한다는 말이다.
브래지어를 입는 건 왜 공공예절이 됐을까. 아시아 국가에서 브래지어를 입는 것이 공익적인 일이 된 건, 양장이 보급되면서 체형에 잘 맞지 않는 서양의 옷을 제대로 입어 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단정한 모습'을 연출한다는 '공익적' 목적. 당시 브래지어와 코르셋은 '성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건강과 위생, 사회 상규에 부합하는 '개화'의 상징이었다. 19세기 그림 속에선 가슴을 드러내며 유영하던 인어가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에서는 조개껍데기로 만든 비키니를 입는 것도 젖과 젖꼭지를 가리는 문명화를 드러낸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일본과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서양의 '가슴 문화'에 각각 집중한다. 각 부마다 각국의 가슴 문화를 개괄하는 '총론'과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 '가슴 이야기'들, 그리고 각국의 가슴 문화를 보여 주는 장소에 방문한 답사기인 '세계의 젖가슴 산책',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더 많은 가슴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소개하는 '젖가슴 공부'로 구성돼 있다. 예술사회학 연구자인 이라영이 신라시대부터 최근의 노브라 이슈까지 다룬 한국의 유방 문화사를 마지막에 더했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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