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가 끌리는 법이라고, 그림을 못 그리니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꿨던 거다. 20년 후라니 까마득하게 멀다고 생각한 것도 동문서답을 한 원인이기도 했다.
그림은 못 그려도 그림 보는 건 좋아한다. 해외에 나가면 유명 미술관은 필수코스다.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대면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또 모작이 아닌 원작을 보는 건 나름의 카타르시스와 감동이 있다.
그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올해 초 별세한 장리석 화백이 떠오른다. 이동훈미술상 제1회 수상자라 중도일보와도 인연이 있는 화백은 한국 구상미술계의 거목이다. 주로 제주해녀와 어린이, 소시민을 그렸던 작가에 대해 조각가 최종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장리석 화백은 일제 강점기 시대를 거쳐온 분이지만, 그분의 그림에는 일본풍 냄새가 없습니다."
최종태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한 건 수개월이 지난 최근이다. 수출규제와 경제 보복으로 일본과의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요즘, 우리 삶 속에 얼마나 많은 일본풍이 있는가에 대해서 깨닫고 있다.
고착된 언어습관부터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즐기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일본풍이 담기지 않은 문화가 없다. 오히려 일본풍을 떼어내고 떼어내다 보니 진짜 우리 것은 무엇인지, 그 본질마저도 가늠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당대 우리가 익히 아는 예술가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현지에서 유학했다. 서구 문물을 일찍이 받아들인 일본에서 우리 예술가들은 열심히 공부했고, 각자의 작품 세계를 완성 시켰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미술이든 문학이든 그 작품에는 분명 알게 모르게 일본풍은 녹아 있을 거다.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했던 작가들, 일본을 찬양하는 시와 소설을 쏟아냈던 문학인들, 노래로 춤으로 친일 행적을 남긴 문화예술인은 수없이 많다. 국화옆에서, 해에게서 소년에게, 무정 등 명작을 남긴 미당 서정주,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도 대표적인 친일 문학인이다.
하지만 현시대의 사람들은 결코 작품과 작가를 분리해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이 변절해야만 했던 시대적 아픔은 분명 하지만, 그럼에도 굳건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던 예술인들을 생각하면 배신감에 몸서리가 쳐진다.
장리석 화백의 그림을 한 점 본다. 거친 듯 투박한 듯 섬세하고 민족의 시련과 슬픔 그리고 웃음이 있다. 이게 바로 한국풍이로다.
'일본풍이 없다'는 최종태 선생의 말씀은 장리석 화백을 향한 존경이자, 이 시대 우리에게 주는 일침이고 화두다.
이해미 교육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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