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인(한국작가회의 감사) |
최근 몇 년 문학과 관련된 강좌에 참여하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창작교실도 열고, 생활 글 강좌도 열어봤다. 창작교실은 짧은 강의 기간 동안에 끝을 보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지만, 그보다는 창작은 어지간한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 벽이다. 그에 반해 생활 글 강좌는 호응도 좋았고 무엇보다 창작의 부담에서 한 발 떨어져 있다.
생활 글 강좌에서 만난 분들의 마음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고민 끝에 글을 읽고 쓰는 기술 없이 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수다 떨기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에 시선이 쏠렸다. 그 옛날 동네 회관에서 가사노동과 밭일, 그리고 학업을 지속하지 못해 아파했던 누나들의 마음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8월부터 계룡문고에서 '책을 읽고 수다 떨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일상을 풀지 못한 분들이 주변에 생각보다 많다. 그게 쌓여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을 신문이나 뉴스를 빌려 말하지 않아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특히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생활 글을 써온 분들의 마음이다. 글을 쓰는 것도 모자라 글을 통해 누군가와 직접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을 몇 달 동안 지켜봤다.
어떤 분은 자신의 글을 이야기하다 울먹거렸고 그분의 목소리에 다함께 공감하며 아픔을 나눈 일도 여러 번 경험했다. 말이라는 것이 소통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함부로 해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는 도구이다. 그런 도구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실리니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시간도 생겼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소통이라는 공간이 만들어 지고 공감이 이루어졌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나' 외롭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심지어 부부 사이에도 결코 쉽지 않은 말이다. 그런데 외롭다는 말을 쓰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시, 소설, 수필을 빌려 할 수 있다.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해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그 말을 통해 자신의 빈 공간을 채우는 의식이 가능하다.
마을회관은 누나들에게 그런 곳이었다. 아버지나 엄마한테 하지 못한 마음을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은 친구들과 함께했다. 이번 문체부 지원 한국작가회의 작은 서점 2차 프로젝트는 외로운 사람끼리 서로의 마음을 읽고 연서 한 장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도 욕심이라면 수다를 떨면서 하루를 넘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김희정 시인(한국작가회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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