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한 후속 기사가 조선일보 7월 20일자 <아무튼, 주말>편에 실렸다. ["아빠는 북송됐지만 아빠 글은 탈북시켰죠"]라는 제목의 이 글을 유심히 들여다 본 건 그 때문이기도 했다. 골자를 추려본다.
= "1급 설계원 한원채(1943~2000)씨는 1998년 8월 공화국을 버렸다. 배급이 끊겨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한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다. (중략)
― 왜 탈북을 결심했나요. -> "아버지는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어렵더라도 우리가 참아야 한다'고 말씀하곤 하셨어요. 사상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분처럼 보였지요. 출신 성분 때문에 감시받는 바람에 더 그렇게 행동하신 거예요.
어머니는 달랐어요. '우리는 김일성·김정일의 노예다. 군대 가면 총알받이밖에 안 된다'며 말리셨지요. 저는 대학에 가서야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김정일이 '사회주의는 과학이다'(1994)라는 논문을 쓴 뒤 연례 행사처럼 문답식이 열렸는데 1997년 2월에는 황장엽 선생이 망명하면서 갑자기 취소됐어요.(중략)
"몇 년 사이에 꽃제비가 부쩍 늘었고 굶어 죽은 시체도 넘쳐났지요. (중략) 이곳엔 희망이 없다는 회의감에 젖었지요. 아버지가 '짓밟혀 사느니 자유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자'고 했습니다." (중략)
"북한 전체 인구로 환산하면 고난의 행군(1995~1999년) 때 300만 명이 죽었다는 계산이 나왔어요. 설마설마 했지만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당시 북한 아사자가 300만 명이라는 뉴스를 듣고 '아버지가 틀리지 않았구나' 했지요. 그 절반이라 해도 기막힌 노릇 아닙니까."
(중략) ― 건너편 중국은 첫인상이 어땠나요. -> "날이 밝아 어느 동네에 들어섰는데 창고에 쌓여 있는 옥수수부터 보였어요. 무엇이냐고 물으니 사료래요, 짐승 사료. '아니, 저 식량이 사료냐?' 다시 물었지요. '쌀밥만 먹지 옥수수는 안 먹는다'고 하더군요. 북한은 저것도 없어 죽는 판인데.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어요." (중략)
"탈북하고 1년 동안 KBS에 귀순을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냈고 베이징 한국 대사관에 망명 요청 전화를 걸었지만 허사였다. (중략)
― 대사관에서는 뭐라 하던가요. -> "햇볕정책을 펴던 때라서인지 '탈북자 대책은 나온 게 아직 없다'고만 했지요. 북한 보위부가 현상금을 걸고 추적 중이라 우리 가족은 절박했어요. 숨겨준 사람마저 의심할 지경이었습니다." (중략)
―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좁은 창살 안에서 처지가 같은 죄수끼리 하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 "슬프게도 북한에서는 그곳이 가장 자유로운 공간이에요. 나머지 모든 자유는 정권이 빼앗았지요. 사람이 자유가 없으면 노예예요. 살아 있어도 죽은 거예요." (중략)
"한의대 졸업하고 얻은 면허증 한 장만 보고 은행에서 1억 원을 대출해줬어요. 그 자금으 로 개원할 수 있었지요. (중략)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으니 감사한 나라죠." (중략)
― 남북 대화를 하면서 북한 인권은 뒤로 밀려났습니다. -> "애들 친구 엄마도 '북한에 돈 좀 퍼주면 어때. 미사일 안 쏘면 되지' 하며 문재인을 찍으라고 했어요. 한국에 돈이 그렇게 많아요? 왜 이렇게 끌려 다니는지……."(중략)
"북한을 너무 낭만적으로만 보니 큰일이에요. 중국과 가까워지고 미국을 등지는 건 김정은이 기뻐할 일이잖아요." (중략) "위정자들이 북한을 똑바로 보고 정책을 폈으면 좋겠습니다." =
가급적 기사 인용 부분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면 문맥이 맞지 않을 듯 싶어 기사를 끌어왔음을 밝힌다. 이 책을 보면 다 알겠지만 북한은 과거 조선처럼 왕조 세습 국가다.
'세습'은 말(馬)이나 소, 개 따위의 나이 세 살을 이르는 말이다. 반면 세습(世襲)은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음을 뜻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습이 북한에서는 버젓이 '자행되었다'.
기사에서도 보았듯 인터뷰의 주인공 한봉희 한의사 가족은 천신만고 끝에 중국으로 탈출한다. 그리곤 KBS와 베이징 한국 대사관에도 망명 요청 전화를 걸었지만 허사였다고 한다. 한국 대사관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명색이 '국민방송'이라는 KBS마저 그처럼 도외시했다니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면 방송사의 수장(首長)부터 내편으로 바꾼다지만 이래가지고 언필칭 공익을 추구하는 방송이랄 수 있겠는가? 여하튼 그럼에도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것은 한봉희 한의사가 "(대한민국은 북한과 달리)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으니 감사한 나라"라는 소회의 피력이었다.
아울러 ["19년 전 아버지가 말했죠. "이 글이 북한에 복수할 유일한 길이다"]라는 부분 역시 공감의 정서로 정박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건 상식이다.
한참이나 늦었지만 이제라도 '복수의 칼'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인터뷰이(interviewee) 한봉희 한의사의 선친이 남긴 저서의 힘 덕분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다음 생에서는 인권과 기본이 튼실하게 보장된 국가에서 태어나시길……!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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