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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클릭한 신발 판매 사이트를 둘러본 뒤 그 사이트를 벗어난다. 잠시 후 다른 웹사이트를 열었는데 아까 본 신발 사이트의 광고가 뜬다. '아까 이 신발 보지 않았느냐'고, 컴퓨터 화면 너머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가 꺼내는 것 같다. 신발을 구매할 의사가 있어서 다시 그 사이트에 접속할 생각이었다면, 사이트를 재검색해보지 않아도 되니 편리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마존에서 쇼핑을 하고 페이스북에서 친목을 다지며 애플을 통해 여가를 즐기고 구글에서 정보를 얻는 시대. 우리의 사이트 접속 기록이 데이터가 되어 수집되고 있다는 건 사실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그 영향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식생활의 변화로 나트륨과 고기 소비가 늘었을 때, 인류의 비만만 야기한 게 아니라 기업형 농장의 등장으로 인한 환경파괴까지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다. 편의성에 중독된 삶. 개인의 선택은 정말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걸까.
『생각을 빼앗긴 세계』의 저자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이라는 테크기업들이 개인의 크고 작은 선택들을 자동화함으로써 개인성을 보호하는 원칙을 무너뜨린다고 주장한다. 테크기업들은 '만병통치약'으로 포장한 알고리듬으로 '우리가 의사 결정을 내리는 모든 상황에서 영향을 행사하고 우리 정체성의 모든 구석구석을 마음대로 접근해 살펴보고자' 한다. 수집한 데이터를 이용해 '우리가 지닌 정신의 초상화'를 만들어 놓고, 그 틀에 맞춰 대중의 행동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해 돈을 번다. 화제가 되고 있는 검색어를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이 읽고 있는 기사, 트윗, 포스팅을 읽도록 추천한다. 지금 보고 있는 기사도 온전한 자기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이런 테크기업의 행동이 악의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건 다소 충격적이다. 이들은 테크놀로지가 인류의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 어떤 기업보다 이상주의적인 어조, 거의 종교에 가까운 신념, 낙관주의적인 비전에 근거해 활동'한다. 그 바탕에는 일 안하는 정치인의 자리에 엔지니어를 앉혀야 한다는, 지난 200년 동안 서구사회가 사로잡혀 있었던 꿈이 자리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철학자들은 프랑스 사회에 '기생충처럼 붙어 있는 오랜 권력 기관들, 봉건 영주, 가톨릭 사제, 군인을 증오했지만 군중이 일으킬 혼란도 두려워했다.' 철학자들은 그 절충안으로 테크노크라시, 즉 엔지니어와 다른 기술자들이 사심 없는 정치를 하는 기술관료 체제를 생각했다. 엔지니어들이 과학 정신으로 정치를 한다면 이성과 질서를 이룩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혁명을 거치고 21세기가 되어도 바뀌지 않은 선민의식으로도 느껴지는 부분이다.
저자는 '대화가 지닌 창조적인 힘, 주위 사람들로부터 겸손하게 배울 때 얻게 되는 지적 잠재력, 그리고 집단이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사색이나 혼자만의 시간을 대체해서는 안 되며, 그런 시간이 있어야 사람들은 비로소 독자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길 수 있다. 자율적인 사고와 고독한 성찰이 사라진 세계를 만든 테크기업의 관념을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내적인 삶을 다시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책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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