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칼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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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칼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승미

  • 승인 2019-07-25 14:19
  • 신문게재 2019-07-26 18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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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승미
각자도생의 시대. 나라마다 자국의 즉각적 실리에 충실하다. 일본은 갑자기 수출규제 품목을 지정했다. 군사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전략 물질이라 정부 승인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대상 물질들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 감광제다. 반도체 소자 생산에 필수소재들이 과연 어떻게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았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소위 '접히는 유리'다. 화학물질로 구현한 폴리머로서 휘어지고 구부러지며 투명하다. 무기가 될 방법이라면 지금처럼 무역전쟁의 도구가 되는 것뿐. 두 번째 물질 고순도 불화수소는 무기와 연관성이 있다. 불화수소로 우라늄 광석을 녹인 후 원심분리기를 열심히 돌리면 고농축우라늄이 나온다. 핵무기 원료 우라늄이. 그나마 군사 용도로 쓰일 가능성이라도 있는 물질이다 보니 일본은 증거도 없이 불화수소가 북한으로 유출됐다고 주장하는 것. 하지만 순도 99.999%의 값비싼 고순도 불화수소를 광석 용해제로 쓴다는 건 최고급 화장품을 가죽장갑 청소용으로 바르는 격이다. 순도 97%짜리 저순도 불화수소, 저렴한 국내산으로도 충분하다.

마지막 규제 품목은 감광제, 특히 극자외선 노광기술용 감광제다. 극자외선 노광기술을 양산에 도입한 업체는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 세계에서 단 두 곳뿐이다. 공정 자체가 복잡하고 어려우며 장비도 비싸기 때문이다. 식각을 위해 기판에 발라두는 물질이 감광제로서, 특정 파장대 빛에 반응하도록 연구 개발된 물질이다. 이번에 수출규제되는 감광제는 시장 90%를 일본 회사 두 곳에서 거의 독점하고 있다. 장기간 연구 투자한 결과물이다.

성능이 비슷한 대체재를 쓰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24시간 가동되는 반도체 제조현장에서 한 가지라도 소재를 바꾸는 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공정 하나하나가 모두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올해 초 대만 TSMC는 다름 아닌 감광제 불량으로 생산 라인과 기판 수만 장이 손상을 입었다. 손해액은 수천억 원. 대량생산에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제품 간 동등성, 이윤의 기반인 수율 보장까지는 수많은 시험과 조건 조절이 필요하다. 새로운 소재개발에는 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신소재는 없다.



무엇이든 사고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역사다.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 힘들고 방황할 때마다 찾는 인생 스승은 억만금을 준대도 구매 불가다. 지식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논문과 특허에는 나오지 않은, 연구 중 직면했던 온갖 문제에서 실패한 시도와 노력, 부산물들은 살 수가 없다. 천연자원 하나 없는 우리는 앞으로도 과학기술과 인적자원밖에는 투자할 곳이 없다. 단기간에 제품화될 연구뿐 아니라 기초 장기연구에도 투자는 지속 되어야 한다.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며 냉소할 일은 아니다. 잃은 후에라도 고쳐 둬야만 아직 남아 있는 소와 앞으로 키울 소를 지킬 수 있지 않은가. 기초과학과 기술개발이 꾸준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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