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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사랑하는 이여 세모난 사람이나 네모난 사람이나
둥근 사람이나 제각기의 영혼 속에 촛불 하나씩 타오르는
이유 올리브 꽃잎으로 뚝뚝 지는 밤입니다
사람의 삶의 양상은 제각기 다르다. 욕망의 기준도 다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기독교적인 신앙을 중심으로 글을 썼다. 종교가 삶의 지표인 사람도 있다. 보문산에 가면 소위 이단교라 지탄받는 사람 몇 명이 그네들의 종교에 대한 진리를 알리기 위해 표지판을 세워 놓고 하루종일 서 있다. 깨끗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멘 부동자세다. 예수의 고난을 보는 듯 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함이 민망스럽다. 휴일에 보문산 정상 시루봉엔 아이스께끼 장수가 있다. 햇볕 아래서 아이스께끼 통 옆에서 등산객이 오면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를 외친다. 그가 아이스께끼 통을 매고 올라오는 걸 상상했다. 예수가 십자가를 매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고통 같을까.
불법과 탈법을 일삼으며 미친 듯이 돈을 그러 모으는 사람의 고민을 생각해 본다. 그에게 돈은 숭배의 대상이겠지.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은 그에겐 신을 넘어서는 삶의 이유다. 돈을 추앙하는 사람, 아이스께끼 하나 파는 사람의 영혼은 어떤 불꽃이 피어오를까. 한줌 재로 남아 몸의 원형을 벗어버리고 훌훌 떠난 나의 아버지는 생전에 어떤 촛불을 피우며 하루를 이겨냈을 지 새삼 생각해 본다. 나는 심장박동이 멈춘 뒤의 아버지를 포옹했다. 너무 늦었다. 시인 고정희는 올리브 꽃잎으로 뚝뚝 지는 밤 촛불을 켰다. 촛불이 다 타기 전에 시인은 서둘러 육신을 불살랐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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