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에는 한글을 모르면 문맹이라 하여 배우지 못한 부모님 세대를 위한 문맹퇴치 교육을 기치로 내걸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았다. 이후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한글만 터득해 가지고는 정보화에 부응하여 신속한 정보획득과 업무처리를 할 수 없어 나이가 많고 적음과 학력에 상관없이 배워야만 했다.
'나는 나이가 많아 그런 것 몰라도 여태까지 잘 살아왔는데' 하면서 정보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변화하는 시대에 뒤떨어져 컴맹 또는 폰맹이라 하여 늙은이 취급을 받으며 불쌍한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이처럼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세월은 흘러간다.
일례로 대중교통을 이야기 해보자. 예전에는 차표나 회수권을 사거나 현금으로 운전기사나 차장에게 주었지만, 지금은 차표나 회수권 등은 사라지고 카드를 이용하거나, 인터넷을 이용한 예매를 하여 사용 시 QR코드를 단말기에 대면 신속히 처리되어 탑승이 완료되는 등 이용의 편리함으로 현금을 사용하는 사람이 오히려 불편을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일생생활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돈의 입. 출금이나 이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은행창구를 직접 이용해야 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이용의 발달로 텔레뱅킹이나 폰뱅킹 이용으로 은행을 직접 찾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일부의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져 아직도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은행창구를 직접 찾아가 일을 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정보화 추세를 무시하거나 종전의 방법만 고집하다가는 많은 시간이 낭비되고 이용할 때마다 불편을 초래하게 됨을 감수해야만 한다.
시대나 세월이 변화해 가고 있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경우를 刻舟求劍(각주구검)에 비유할 수 있다. '여씨춘추'에 나오는 말로 楚(초)나라 사람이 배에서 물속에 빠뜨린 칼을 찾을 속셈에서, 빠뜨린 자리를 뱃전에 표시해 놓았다가 부두에 정박한 다음 그 표시를 보고 칼을 찾으려 물속에 뛰어들었다는 古事(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융통성 없이 현실에 맞지 않은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이다.
필자의 고향에는 86세가 되신 홀로 사시는 아버지가 계시다. 고향집을 방문할 때마다 은행의 편리한 점을 말씀드려도 종전에 해오던 방식대로 위험을 무릅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면소재지인 농협으로 가서 일을 보신다. 요즘 같은 편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간다면 하는 것이 자식의 마음인데 당사자인 아버지는 직접 창구를 방문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고 일을 마치고 나면 다른 곳에 들러 주변소식도 들을 수 있어서이고, 집에만 계속 있으면 우울증에 걸리기 때문에 바깥나들이 할 겸 은행을 찾으신다고 하신다. 듣고 보니 그러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는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꾸준한 대화를 통하여 스마트폰 활용방법을 알려드려 활용하고 계신 모습을 보며 부자지간에 마주 보며 웃은 일도 있었다.
명심보감 권학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不積?步 不以至千里 不積小流 無以成江河(부적규보 부이지천리 부적소류 무이성강하)
'발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리에 이르지 못하고, 작은 흐름이 모여 강과 바다가 된다.'
목적을 위해 나아가려면 일단 발걸음을 떼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論語(논어)의 학이편에 나오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는 말이 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뜻으로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오늘날 평생학습을 추구하는 시대에 딱 맞는 말이다.
평생을 배워야 한다는 말에 반감을 가진 일부의 사람들도 있다. 평생 배워서 어디다 쓰게 하고 말이다.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이다. 예전에는 지식을 본인만 알고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 폐쇄적인 문화가 있었기에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요즘은 알고 있는 지식을 나만 가지고 있으면 쓸모없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필자가 다니는 평생학습원 '재미있고 유익한 고사성어반'(지도교수 장상현)에는 80세가 넘은 극작가이며 칼럼리스트인 김용복 님을 비롯해 70세가 넘은 전직 원로 목사. 수필가. 시인. 전직 교육가족과 60세 이상의 전직이 다양한 분들로 분포되어 있는데, 대부분 나이가 많은데도 배움에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어서 평생에 걸쳐 배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평생을 배워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카멜레온처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나이가 많다 하여 배움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평생을 배워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하여 배우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남에게도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 배우는 데는 늙고 젊음을 따지지 않고 세대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대화를 통하여 동질감을 갖게 하고 서로가 모른 것이 있으면 알려주고 방법을 강구하도록 협력의 길을 모색할 때 배우는 기쁨 알려주는 즐거움으로 사회는 건강하게 변화해 나갈 것이다.
염재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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