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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임신한 '나나'가 한국행을 결심한 건 한국의 대학생 '서영'의 두 번째 메일 속 문장 때문이었다. 35년 전 프랑스로 해외입양 돼 파리에서 배우이자 극작가로 살고 있는 나나에게 정체성, 존재감, 집, 예의 같은 단어는 그가 삶에서 그 무엇보다 간절하게 희구하는 것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입양 전 이름인 '문주'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서영의 제안을 그렇게 받아들인다.
한국에 온 나나는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만난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에도 몰두한다. 만나는 이들의 이름을 묻고, 거쳐 간 서울 곳곳의 지명을 묻고, 그 의미를 묻는다. 이태원 옛 기지촌에 자리한 서영의 자취방에 머무는 나나의 곁에는, 같은 건물 1층 '복희식당' 연희 할머니가 등장한다. 나나를 다정하게 챙기는 연희 할머니는 돌보던 아이를 외국으로 입양 보낸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 겁탈당한 여자들이 아이를 낳고 모여 살아 '이타인'으로 불렀다는 데에서 유래한 이태원. 그곳에서 연희 할머니가 돌보고 입양보낸 아이 '복희'도 미군과 한국 소녀 사이에서 태어 난 아이였다.
나나는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임신한 몸으로 할머니를 돌보는 한편 그가 평생 애타게 부르던 복희를 찾고 한국에 온 이유인 기관사를 찾는 일에 매진한다. 서영은 나나가 버려지고 또 구해진 청량리역의 철로, '문주'라는 이름으로 살던 기관사의 집, '에스더'라는 이름으로 살던 인천의 보육원을 빠짐없이 되짚으며 나나의 삶을 자신의 영화에 담는다. 짧다면 짧을 수 있는 몇 달의 시간 속, 이들은 어떤 관계보다 끈끈하게 얽힌다.
소설의 인물들은 그렇게 혼자만의 절망에 빠지지 않고 타인의 삶 쪽으로 손을 뻗어 기꺼이 서로에게 연루된다. 줄곧 자신을 향한 탐색과 타자를 향한 응시의 시선을 보여준 작가의 작품답다. 해외에 입양 보내진 한국인과 기지촌 여성의 존재를 틔워 올리면서, 삶에 등장한 우연한 타인을 외면하지 않음이 서로에게 구원의 순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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