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쯤이었을까. 학기 말, 사진 동아리는 여느 때처럼 사진전을 열었다. 사진전은 한 학기의 노력이었다. 그만큼 재미있는 사진도 있었고 따뜻한 사진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걸음을 멈추게 한 사진은 따로 있었다.
다리 사진. 프레임을 가득 채운 여자 다리 사진. 허벅지부터 쭉 뻗은 모델의 다리는 하반신을 살짝 덮고 있는 흰 이불만큼이나 새하얬다. 어렴풋이 직감했다. 심각하게 보수적인 우리 학교에서 절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예상대로 얼마지 않아 학교 대나무 숲에 사진에 대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다만 본래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었다. 사진에 대한 근본적 비판보단 사진 속 다리 주인인 모델에 대한 걱정이 담겨있었다. 한 집안의 예쁜 딸이 선정적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정확한 사용 용도를 몰랐을 모델에 대한 걱정, 심지어 모델의 부모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냐며 그런 이유로 사진을 치우는 게 좋지 않겠냐는 글. 정중하긴 한데 무례하고 걱정이긴 한데 오지랖 같은 말들이 나열됐다.
의도야 어찌 됐든 댓글 창은 난장판이 됐다. 원 글쓴이를 시작으로 모두가 사진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냈다. 토론의 장. 누구는 예술에 대한 자유를, 누구는 학교 풍토의 염려를, 누구는 남녀의 시각차를…. 사진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듯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렇게 끝이 없을 것 같은 논쟁이 의외로 가볍게 끝난 건 사진 속 모델이 댓글에 등판했기 때문이다. 논란의 중심에 있던 다리 주인. 다리 주인이 나타났다. "내가 그 다리 주인이다"라는 말과 함께 등장한 다리 주인은 원 글쓴이의 말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신의 작품과 위상을 함께 지킨 해결사가 됐다.
다리 주인은 말했다. 사진엔 그 어떤 선정적 의도도 없으며 오히려 여성의 활동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법에 대한 인고 후 탄생된 결과물이라고. 더불어 사진은 사진작가만의 작품이 아닌 모델도 함께 참여한 공동작품이며 본인의 다리가 그런 식으로 비춰진 것에 대한 불쾌함, 자신의 부모님까지 들먹거린 무례함에 대해 열거했다.
댓글 창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실제 싸움 현장을 목격한 것도 아닌데 얼굴이 벌게졌을 원 글쓴이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눈을 치켜뜨고 있을 다리 주인,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어색한 공기가 그려졌다.
아이러니했다. 다리 주인은 원 글쓴이가 생각하고 걱정했던 부분에 대해 단 한 가지도 공감하지 않았다. 더불어 다리 주인을 향해 내뱉어졌던 "어떡해"라던가 "안 됐다"와 같은 걱정의 말들 또한 닿지 않았다. 좋은 마음에서 시작된 걱정과 염려가 하등 쓸모없는 일이 됐고 오히려 상대를 더 기분 나쁘게 한 일이 돼 버렸다.
간혹, 의도가 좋으면 좋은 일이겠거니 착각하곤 한다. 상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는 배려가 불쾌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잊는다. 상대는 이를 수용할 의무도 여유도 없건만 때론 자신의 진심이 통하지 않았다며 화까지 낸다.
원 글쓴이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글쓴이의 마음이 시간이 흘러 다리 주인에게 닿았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과연 내가 건네는 선의가 진짜 상대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인지, 그 진위에 대해서 말이다.
유지은 기자 yooj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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