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황우 한밭대 교수 |
독일의 커뮤니케이션학자 노엘레-노이만(E.Noelle-Neumann)이 제시한 ‘침묵의 나선이론’(the spiral of silence theory)에서 인간들은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지배적인 여론과 일치되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지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런 경향은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침묵의 정도를 증폭시킴으로써 마치 소용돌이와 같은 모습의 과정이 일어나게 한다.
자기 의견이 주위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다면 자유롭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반대로 소수의 일탈적 위치에 있다면 고립의 두려움을 느끼고 내심을 숨긴 채 침묵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소수의 의견을 가진 사람의 숫자는 실제보다 더 적게 나타난다.
침묵의 나선이론은 누가 봐도 명백하게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주관이 많이 개입되는 정치나 윤리문제 등 주로 다수결에 의해 정해지는 문제라면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하므로 침묵의 나선편향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 속담에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목소리가 크면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해 기(氣) 싸움에서 이기고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氣) 싸움에서 이겼다고 승리한다는 뜻은 아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큰소리만으로 이기려는 사람들이 많다. 내 의견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내 의견이 이미 다수 의견, 즉 대세인 것처럼 홍보해 내 의견을 관철하려 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거짓뉴스를 그럴듯하게 과대 포장해 사람들의 감정을 부추기는 일이다. 비록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효력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사람이 흥분하게 되면 목소리가 커진다. 목소리가 크면 이성과 논리를 잃고 모든 것을 감정적으로 처리하려는 막무가내형으로 비춰지기가 쉽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자칫 무식하거나 폭력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정말 이기고 싶다면, 큰소리를 칠 게 아니라, 흥분을 좀 가라앉힌 상태에서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상대방보다 더 많이 알아야, 논리적으로 압도할 수 있다. 감정적으로 큰 목소리로 대드는 사람보다 격한 감정 속에서도 그 감정을 다스리고 논리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더 무섭다. 이제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버려야 한다. 목소리가 크면 간혹 이긴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이기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일 수 있다.
옛말에 '우는 애부터 젖을 먼저 준다.' 말이 있다. 표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말로 어떤 사안이든,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다수의 대중이 침묵하는 가운데 유독 자기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다 옳은 의견은 아님을 우리 스스로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노황우 한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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