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제공 |
고등학생인 주인공 캄빌리는 나이지리아에서 식음료 사업체와 언론사를 소유한 아버지를 뒀다.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항상 베푸는 성품으로 지역사회뿐 아니라 종교계에서까지 널리 추앙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캄빌리의 주위 사람들은 그가 누리는 넉넉한 사회경제적 환경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캄빌리의 일상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두려운 상황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아버지는 무지막지한 고생 끝에 자수성가를 한 동시에, 가톨릭교로 귀의해 원리주의자로서 엄청난 고집을 가진 인물로, 가족 내에서 권위와 폭력을 일삼으며 가족 구성원에게 고분고분한 순종을 요구한다. 캄빌리의 어머니 역시 끊임없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심지어 아이를 유산하기도 하지만 아무에게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학생인 캄빌리 역시 꼼짝없이 아버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라야만 하는 처지다. 그런데 어느 날, 캄빌리의 오빠 자자가 아버지의 명령인 주일에 영성체 받기를 거부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주님의 몸을 거부하는 건 죽음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오빠는 그럼 죽겠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미사 경본을 집어 오빠를 향해 던졌다.
이 사건 이후로 뒤죽박죽되기 시작한 일상 속, 캄빌리는 차차 자신이 처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불합리한 명령들,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보복당하는 가족 내 규율들은, 그러나 아버지의 '사회적 이미지' 때문에 그에게 심리적 갈등을 일으킨다. 아버지는 가족 내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와 헌신, 그리고 언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투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을 반복하던 캄빌리는 다른 도시에 사는 고모네 가족을 만나게 된다. 그의 가족보다 가난한 지역에서 물과 기름도 없이 어렵게 살지만 자유롭고 지적이며 자주적인 사촌들의 모습을 보고 겪으면서, 그는 엄격한 가족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꾸기 시작한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나이지리아의 상류층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라는 머나먼 대륙에 있지만 한국과 굉장히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나라다. 과거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현재는 미국 문화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종교적으로도 토속 종교와 가톨릭교, 개신교가 뒤섞여 있다. 사회제도적으로도 가부장적 뿌리와 현대 민주주의적 가치가 혼재돼 과거와 현재 사이, 세대간 갈등이 소설 속에서 우리 사회와 매우 비슷하게 전개된다.
소설은 억압적인 가정의 사춘기 소녀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라는 모습 속 종교적 자아의 성장까지 보여준다. 모두가 가지고 있던 자신만의 십 대 시절을 돌아보게 되는 이 소설은 피부로 와 닿는 솔직한 일기 같은 느낌으로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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