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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황가한 옮김│민음사
"내일 파리에 가자!" 그가 어느 주말에 말했다. "정말 진부한 건 아는데 당신이 한 번도 안 가 봤다니까 내가 당신한테 파리 구경을 시켜 주면 진짜 멋질 것 같아!"
"그렇게 자다 벌떡 일어나서 파리에 갈 순 없어. 나는 나이지리아 여권을 갖고 있잖아. 그러니까 비자 신청을 해야 해. 은행 잔고 증명서랑 건강 보험 등등 내가 거기 눌러앉아서 유럽에 짐이 되지 않을 거라는 온갖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고." -본문 중에서
주인공 이페멜루는 언제나 당당한 태도로 가식 없이 말하는 자신감 넘치는 인물이다. 그의 애인인 오빈제는 직설적인 이페멜루에 비해 조용하고 사려 깊은 성격으로 등장한다. 이페멜루는 오빈제와 헤어지면서까지 동경했던 미국행을 꿈꾸지만, 미국이 자신을 '흑인', '여성', '취업 준비생' 등으로 규정하며 삶 깊숙이까지 자존감과 정체성을 뒤흔들자 가장 어두운 밑바닥까지 내려갈 정도로 좌절하고 방황한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우연히 쓴 블로그 글로 인해 성공을 거머쥐기도 하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백인 미국인을 사귀면서 미국 영주권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그에게 미국은 쓰디쓴 실패와 달콤한 성공이 공존하는 곳이 된다. 힘들었던 만큼 미국에서의 성공한 삶을 더 즐길 수도 있지만, 그는 미국에서 성공한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백인 사회에 끼어들어 그들을 모방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 『아메리카나』는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발랄한 페미니즘으로 꼬집는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와 『엄마는 페미니스트』로 세계에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한 작가답다.
작가는 이페멜루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 특히 그들의 위선적인 속마음과 물질만능주의, 피상적인 관계 등을 날카롭게 포착해 까발리듯 드러낸다. 어느 상황에서나 맞닥뜨릴 법하지만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미묘한 순간들을 묘사한 아디치에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자아내며 소설 읽는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해 준다. '인종에 대한 세밀한 관찰에서 나온 힘과 독창성'으로 '얼마나 많은 미국인이 인종에 대한 고정 관념에 당황하면서도 계속해서 그것을 답습하는지, 또 일상적인 인종 차별주의가 얼마나 아직도 흔한지(이코노미스트)'를 보여준다.
책은 미국 현지에서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고 《뉴욕 타임스 북 리뷰》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되며 전미 서평가 협회 상을 받았다, 국내에선 2015년 민음사 모던클래식을 통해 선보였던 작품이다. 번역 편집 전반을 다듬고 주인공 이페멜루처럼 '미국에 사는 비미국인 사진작가' 김강희의 사진을 표지로 새 옷을 입었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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