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예자/ 시인, 수필가
나는 수동형이다
선택도 반항의 자유도 없다
일을 시작하면 허리 한 번 뒤집지 못하고
엎드려서 일을 마쳐야 한다
칼날 아래 등을 대고 얻어맞고 저며지며
남의 생을 잘라낸다
때론 화려한 성과도 낳지만
칭찬은 늘 다른 이의 몫
상처투성이 나의 몸엔
연고 하나 바르지 못하고
일광욕 몇 번이 고작이다
어제 한 사람이 자살했다
아니다 억울하다 하소연했지만
내 위에 올라와 난도질당한 그때부터
이미 정해진 그의 길
그가 목을 맨 나무도 수동형이다
말리고 거부할 자유는 없었다
조의도 표하지 못했다
말없이 임종을 지켜주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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