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갑질을 하는 사람은 누굴까?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진 소위 센 사람일까? 한국언론재단 조사에 의하면, 자신이 갑인지 을인지를 묻는 질문에 "항상 갑이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1%에 불과하고 "을이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85%다. 대부분은 자신을 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사회 갑질은 갑을간이 아니라 을들간-정확하게는 자신이 을이라고 생각하는-에 일어나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갑질은 애초에 인성이 글러먹은 나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반대다. 갑질을 행한 사람들은 "사회정의나 조직을 위해 바람직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갑질은 보통사람간에 일어나는 일이며, 갑질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도로에서는 어떨까? 도로에서 대부분은 "나는 갑이 아니고, 내가 한 행동은 더더욱 갑질일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횡단보도를 느리게 걷는 노인에게 으르렁대듯이 차를 들이미는 일, 이면도로에서조차 자동차에 양보하고, 자전거는 한쪽으로 비켜주며,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자동차가 멈추어주면 보행자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일이 동등하게 권리를 누리는 것일까? 비대칭이며 갑을관계다. 우리사회 교통환경에서 부지불식간에 자동차와 보행자 그리고 자전거간에 갑을관계가 공고하게 굳어진 것이다.
이렇게 굳어진 도로위 권력관계는 교통운영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보행자가 이용하는 횡단도의 녹색시간은 자동차보다 짧다. 심지어는 보행 신호일 때에도 자동차는 지나갈 수 있다. 또한, 대부분 교차로에서는 도류화를 시행하고 있어 보행자들은 2번을 건너야 하고 자동차와 충돌에 상시 노출된다. 안전이라는 명분으로 만들어놓은 장치가 안전을 가장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가감속차로도 마찬가지다. 대로급의 도로에나 만들어야 하는 가감속차로를 모든 진출입구에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보도공간은 그 만큼 줄어들고 비뚤어져 있다.
이렇듯, 도로관리자의 무관심 속에 갑질을 도로이용주체들이 인지조차 못하는 사이에 오늘도 도로위에서는 갑질이 계속되고 있다.
갑질을 예방하는 방법이 있다.
도로위 갑질의 당사자가 언제든 본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고, 갑질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도로구조를 개선하고, 도로운영은 갑질이 성행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도로는 공유의 공간이고 그 공간에서는 승용차, 버스, 자전거, 보행자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갖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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