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수용, 자기이해'라는 단어를 우리는 수없이 말하고 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자신 안으로 들어와서 무의식으로 경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것을 가슴으로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위축된 마음, 억눌렀던 마음이 편안해진다. 만약에, 자기수용이 아직 안 되었다는 것을 계속 자신을 보기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를 보면 과거를 알 수 있고, 과거를 보면 현재를 알 수 있다"란 말이 자녀양육에서 그대로 접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부모)의 과거 즉 부모로부터 받은 양육의 형태임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또한 현재의 양육방법을 선택하는 이유 또한 자신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던 형태 그대로인 경우가 대다수다. 때로는 부모의 양육방법이 너무 싫어서 전혀 반대로 양육을 하는 사람도 있다.
부모로부터 사랑하는 법을 배우거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지금의 자녀에게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가 없다. 우리는 그만큼 배운 데로, 배운 만큼만 하게 되어 있다. 삶을 되돌아보며 자책할 필요가 없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교육 받은 데로, 행하게 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원리다.
부모와 자녀와의 대상관계에서 맞벌이 엄마는 자녀에게 '엄마는 일하는 사람', '엄마는 바뻐'라는 인식이 크게 차지하고 있다. 막상 집에서 아이를 24시간 보게 한다면, 그만큼 힘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의 과거를 반영할 수 있다. 자신도 어릴 적에 보호나 사랑을 받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을 전혀 무시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형성되어야 할 부분이 참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 만큼 채워주지 못하면 아이들 마음 안에서는 자신이 느끼는 만큼의 마음의 결핍이 생기게 된다. 그것이 바로 '텅빈 가슴'의 공간이 된다. 점점 때로 놓치게 되면 텅빈 가슴의 크기는 점점 커진다. 결국 이러한 마음의 결핍이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더 깊게는 무의식을 탐색하는 것이다. 혼자가 힘들면 건강한 상담사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가슴의 빈 공간이 어디서 시작되었을까"를 계속 사유(思惟)하면 도움이 된다.
게슈탈트(형태주의)의 창시자인 펄스는 경험을 통한 자각을 통해 통합을 강조하였다. 게슈탈트의 빈 의자 기법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돌아가서, 수용 받지 못하고, 외롭고 쓸쓸했던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어주고, 수용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해야 한다. 그 과정을 잘 마친 다음에 자녀에게 적용을 하면 된다.
자신의 빈 마음을 보면서 그 때의 쓸쓸했던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어주고 수용해 주면 된다. '그 때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대했나', '그 때 나는 부모의 말과 행동에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탐색하면서 가장 어린 시절부터 퇴행해 보는 것이다. 기억나는 것을 하나씩 다루면서 다독이며 감싸주고 안아주면 된다.
예를 들면, '경은아, 그 때 정말 힘들고 어려웠지. 이제는 괜찮단다.' 이렇게 다독이면 된다. 그리고 그 때의 경은이를 충분히 안아주고 그 작업이 끝난 다음 다른 기억으로 넘어가게 된니다. 어릴 때가 기억나지 않으면, 기억나는 연령대로 넘어가면 된다.
과거의 슬프고 외롭고 쓸쓸했던, 소외받아서 자기 자신을 자신 또한 안아주지 않았던 그 시절에 가슴 안에서는 빈 공간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과거의 자신을 안아주고 감싸주면서 울어도 좋다. '미안하다'고 사과해도 좋다. 그렇게 하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빈 가슴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는 채울 수 없다.
중간 중간에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이 떠오를 수가 있다. 그럴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자신 스스로 위로하면서 보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족들과 함께 푸는 방법이다. 후자의 경우는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닐 수 있다.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내서 헤집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가족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가서 상대방의 사과를 받을 필요가 있지만, 이미 지난 과거일로 헤집는다는 것은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져 있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을 꺼내서 사과를 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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