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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인의 '빨리 빨리 습성'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사실 이 '빨리 빨리 습성'이 우리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성장을 가져온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이나 다른 조직에서 어떤 정책 결정과 추진과정에서 빠른 판단과 결정 그리고 강력한 추진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와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면밀히 보아야 하고 소외되는 부분이 없어야 함에도 빠른 성과 도출과 결과 위주 평가는 부작용과 기형적인 변화와 왜곡된 성장 구조를 가져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런 '빨리 빨리'는 디지털 시대에서 중요시 하는 속도와 빠른 변화 및 적응력과 너무 잘 부합하여 우리가 새로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빨리 빨리' 성향은 단순히 우리가 생활하는 영역에서 우리가 행동하는 활동에만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남보다 먼저 선행학습을 해야 하고, 남보다 먼저 일을 끝내야 하고, 남보다 먼저 인정받고 승진해야 하는 등 우리는 무엇이든 남보다 먼저 그리고 빨리하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고 불안해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빨리 그리고 먼저 무엇을 해야 하고 쟁취해야만 하는 것으로부터 사실 얻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급하게 서두르다가 일을 망치거나 실수 또는 실패하는 경우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함에 있어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그리고 천천히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쉽게 판단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일을 추진하지 않는 것이 사실 올바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답답하고 우유부단하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우리가 어떤 경우에서도 '빨리 빨리'를 하게 만들고 맙니다.
며칠 전 정부 모 부처의 고위공무원 승진인사가 있었습니다. 그 승진 후보자에 아끼고 존경하는 후배가 포함되었지만, 이번 승진인사에서 누락되었습니다. 능력이나 인품, 그리고 조직운영 등 어느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후배라서 승진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담담하고 오히려 승진이 빨리되는 것보다는 천천히 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후배를 위로하기 위해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배는 '형님! 빨리 간다고 빠른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위로를 하려고 한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습니다. "빨리 간다고 빠른 것이 아니다"라는 그 후배의 말에 "그래 우리 천천히 오래 함께 갑시다"라는 적절하지 않은 대답으로 통화를 끝냈지만, 그 말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사실 '빨리 간다고 빠른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말을 가슴에 담고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어떤 일에 대해서 빠른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 동안 생활하면서 빠른 것만을 추구해서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무엇인가를 얻고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그 위험이 현실이 되지 않아서 큰 불행이 되지 않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했던 기억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빠른 성과나 결과로 잊혀 버리거나 덮어져 보이지 않게 되었고, 혹시 이런 것들을 기억하더라도 우리는 결과만을 보고 무시해 버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야 하는 날들을 생각하면, 이제는 '빨리'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사는 것을 생각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역시 이제는 '성과 지상주의'보다는 과정과 절차도 중요한 사회로 변화되고 있음도 인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록 이제까지의 우리 삶이 빠른 것 중심으로 살았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조금 한 박자 쉬면서 돌아보는 삶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학기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보직을 맡으면서 각종 규정이나 제도를 개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규정과 제도 개정을 시작하면서 '빨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전면적인 개정 작업이 빨리 진행되지 못하고 있어 조급함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후배의 말처럼 반드시 빨리해야만 하는 것이 빠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정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빨리'라는 조급성으로 인해 '개선(改善)'이 아닌 '개악(改惡)'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들었던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나 빠른 삶만을 추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빨리 간다고 빠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 단순히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에서 겪어야 하는 위험이나 실패를 줄이고 없애기 위해서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찌 보면 '빨리 간다는 것'은 '빨리 끝나는 것'과 같은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빨리 끝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그 동안 '빠른 것'만을 추구하며 앞만 보며 달려온 삶을 한번쯤을 돌아보면서, '빠름' 때문에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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