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
열심히 하는 것처럼은 보이지만 내실은 엉망진창, 시스템은 부족하고 구호만 시끄러운 어느 시절을 떠올리고 보면, 이 롱테이크 신은 80년대의 한국을 통째로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은 학창시절에나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살인의 추억>이라는 제목은 새삼 이상하다.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추억하는 살인시절이라도 있는 양. 80년대 어느 연쇄살인사건의 숨겨진 가해자로서, 무능한 경찰 공권력을 지목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제법 뚜렷해 보인다. 그런데 프레임을 채우는 소도구와 인물의 액션을 위와 같이 팩트 중심으로 나열해 보기만 해도 금방 파악되는 의미건만, 나는 영화를 두 번 즈음 보고서야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정신없는 현장이 다 그렇지 뭐 싶어 넘겨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에게도 혐의가 있다. 추억의 주먹구구 시절에는 어차피 다 저렇게들 살지 않았느냐고 익숙하게 감각해버린 '한국인'으로서의 혐의.
사실 송강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그가 비록 무능하고 후진적인 당시의 경찰 일군을 대표하는 존재라 하더라도, 그는 그 시절의 평범성을 동시에 지닌 일개 형사이다. 적어도 대단한 악마적 권력의 카르텔 같은 것과는 무관하다. 누군가는 그런 그에게서 악의 평범성과 아이히만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저 짜장면을 먹으며 수사반장의 오프닝 음악을 천진하게 따라하는 그의 서민적인 모습이 불러일으키는 정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좀 찝찝하기는 해도 '추억'일 수 있는 것이다. 범인을 목격했다는 마지막 소녀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그냥 뻔한 얼굴인데. 평범해요." 평범한 송강호의 얼굴이 평범한 우리의 얼굴을 마주보며 영화는 끝난다.
한편, 이 현장 보존의 아이러니가 봉준호의 또 다른 범죄스릴러물 <마더>에 스스로 패러디된다는 점은 자주 언급되지 않는 편인 것 같다. 배경은 선진국이 된 20여 년 후 한국의 농촌. 정신없는 핸드헬드 롱테이크 신과는 대조적으로, 고정된 프레임 안에 경찰들이 한 사람씩 어슬렁어슬렁 들어와 도레미 음계마냥 차례차례 서서는 옥상 난간에 빨래처럼 널려 있는 피해자의 시체를 심상하게 바라본다. 수사도 차례차례 매뉴얼대로 이루어진다. 심지어 요즘은 순경 애들도 CSI 같은 미드를 하도 봐서 샤프하단다. 대사는 더욱 명시적이다. "상당히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현장이. 볼 만하지 않냐."
볼 만하다. 너무 볼 만해서 탈이다. 후드가 달린 하얀 우주복 차림으로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대는 감식반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크게 쓰인 "과학수사" 유니폼을 입고 있다. 현장 보존 잘하라는 80년대적 주문에 대한 2000년대적 응답은 현장 보존을 잘한다는 표지의 과학수사 유니폼을 보란 듯이 입은 전시행정인 셈이다. 봉준호의 한국 사회에 대한 인사이트가 아프도록 날카롭다. 범인을 잡기 위한 현장 보존이 아니라, 현장을 잘 보존했다는 보고서를 쓰기 위한 현장 보존 쇼. 형사들의 심상함도 베테랑의 태도라기보다는 부정적 의미에서의 관료적 태도로 보인다.
어쨌든 세상은 달라졌고 어느 면에서는 발전했다. 빠꾸미 박기자와 늦게 오는 감식반만을 의식하고 탓하느라 피해자에게는 관심도 없어보이던 송강호와 다르게 피해자의 이름과 가족 관계부터 파악하는 2000년대의 형사들은 둔기에 의한 두개골 골절과 과다 출혈까지도 어렵지 않게 밝혀낸다. 진범은 의외로 쉽게 잡힌다. 그러나 <마더>의 진범은 마음 놓고 비난하기 좋은 연쇄살인마가 아니기에 갑갑하다. 이제 진짜 문제는 과도하게 잘 작동되는 것으로 보이는 매끈한 시스템 뒤로 숨었다.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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