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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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의 행복찾기]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의무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9-06-2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벌써 6월말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6월이 지나간다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대학에서 근무하는 나에게는 '벌써'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이번 학기가 시작되고 학교에서 보직을 맡아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강의와 학생지도 그리고 맡게 된 보직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았음에도 다 하지 못하고 한 학기가 지나간 것 같아서입니다. 무엇인가 일에 집중하다보면 흔히 시간이 가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이번 학기에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정말 빠른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었나 싶으면 바로 주말이 되는 것을 느끼니 말입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난 학교는 바쁨이라는 흐름에서 한 순간에 정지된 것 같이 조용합니다. 물론 성적처리도 해야 하고 또 다른 행정적인 일과 특히 변화되는 대학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교직원들은 이번 방학을 편히 지낼 수 없지만 말입니다.

비록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오늘 아침도 다른 날과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우연히 과거에 썼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2012년 2월 28일 써 둔 '대학의 임무'라는 글입니다. 이 글은 당시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면서 무엇인가 쓰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고 몇몇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보냈던 글입니다. 이때 썼던 '대학의 임무'라는 글은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쓴 글이라서 방학이 시작하는 지금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그 때 고민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말입니다. 2012년 당시 썼던 글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한 은사님께서 '대학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에 대하여 말씀하신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은 스스로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고 그 연구에 제한도 한계도 없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사실 그 때 대학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독일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고 나서야 대학의 자유도 그리고 학문의 자유라는 것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학문이란 것이 어느 누구도 가르친다고 해서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학문은 스스로 터득하고 깨우쳐야 하는 것이고, 대학에서의 수업은 단지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독일에서의 대학 수업은 한 마디로 통제도 없고 제한도 없었습니다. 강의라고 하는 Vorlesung은 학생은 물론이고 시민들도 참여하여 자유롭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강신청도 출석부도 그리고 심지어 시험도 없었습니다. 그냥 듣고 싶으면 듣을 수 있는 수업인데, 그 강의의 내용이나 수준은 격이 가장 높은 수업입니다. 따라서 학자들이 연구논문을 쓸 때, 언제 어느 교수의 강의 내용 중이라고 인용해서 사용할 수도 있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Vorlesung을 들었다는 증명은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했고, 의무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매번 수업마다 수백 명의 수강생들이 복도와 계단에서 청강하기도 했습니다. (중략) 한 마디로 독일식 수업은 자율과 스스로의 학습 및 연구로 이루어지는 수업입니다."

"(중략) 그런데 우리 대학의 사정은 이와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이미 정해진 교과과정과 내용에 따라서 수업을 개설하고, 강의와 시험을 보고 학점을 부여해야 합니다. 학생의 자율적인 선택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요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정책의 방향을 보면, 학문의 미래에 대해 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학의 학문적 연구보다는 취업과 창업이라는 것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략) 대학에서 취업교육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대학교육 전반이 취업교육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학은 연구를 통해 새로운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냥 학생의 취업만을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면 대학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집중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의 방침에 따르지 않을 경우, 각종의 불이익이 따라 오기 때문입니다. (중략)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 특히 대학이 담당해야 할 미래에 대한 가치의 창출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유는 이제 과거의 고전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당시 했던 고민을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그 고민을 잊고 지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위해 대학이 무엇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오히려 대학의 임무와 학문의 가치를 손상시켰거나 적어도 망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학문의 자유를 인식시키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미래를 대비하는 능력과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정부의 정책이나 대학의 존립을 위해 정해진 틀을 지켜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틀 안에서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창의적 준비를 위해 자율적인 노력을 해야 했음에도 단순한 평가를 위한 그리고 그 평가의 결과만을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도 그 개념이나 내용,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이나 계획 등도 사실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상황이나 결과는 대략 인식하고 있습니다. 1차 산업혁명이 기계라고 하면, 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에너지라고 할 수 있고,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 등 디지털을 통한 데이터의 공유라고 할 수 있으며, 4차 산업혁명은 이들을 융합하고 인간의 힘이 아닌 융합을 통한 자율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과연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고 학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각 단계별 발전과정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는 것이 추세입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도 대학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대략적인 예측으로 4차 산업혁명 이후의 5차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의 중점은 바로 '인간'(Human)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의 임무는 다시 '인간'이 중심이 되는 학문을 추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예전에 했던 고민이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대학의 임무와 학문의 자유를 통한 미래에 대한 예비와 대응을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마가 시작되는 주말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정리해야겠습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박광기교수-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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