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고우면(左顧右眄) 끝에 역전으로 나갔다. 구두를 닦는 곳을 찾아가서 "나도 구두닦이로 돈을 벌게 해주세요."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속칭 '오야붕'이라는 사람은 나비눈(못마땅해서 눈알을 굴려, 보고도 못 본 체하는 눈짓)의 오만불손(傲慢不遜)에 더하여 성정마저 강다짐(덮어놓고 억눌러 꾸짖음)이 농후했다.
"안돼!"라는 말을 들었지만 포기할 수 없어 몇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정성이 통했는지 '찍새'라는 임무를 주었다. 참고로 찍새는, 닦을 구두를 모아서 구두닦이에게 가져다주는 일만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주로 다방이나 역 안에 들어가서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의 구두를 벗겨서 닦새(구두만 전문으로 닦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형'에게 갖다 주었다.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실히 일했지만 '오야붕'이라는 사람은 툭하면 우리 구두닦이들을 구타하기 일쑤였다.
어머니 없이 자란 것도 억울한데 이유도 없이 두들겨 패는 그를 반드시 응징하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밤마다 권투도장에 가서 복싱을 배웠다. 그러자 자신감까지 모락모락 자랐다.
그날도 오야붕은 대낮부터 잔뜩 술에 취하여 애먼 구두닦이 동료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참다 못 해 드디어 분기탱천(憤氣?天)했다. "야, 이 000야. 너 오늘 내 손맛 좀 봐라!" 그날 그는 나에게 마치 비오는 날 먼지 나듯, 그것도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맞았다.
복싱을 배운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오야붕은 자신의 과오를 사과하곤 '그 세계'를 떠났다. "성깔은 못 됐지만 뒤끝은 깔끔한 놈"이라는 주변의 평판이 그에 대한 유일한 칭찬이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매거진이 [청정누리]다. 5.6월호의 '경주 人터뷰'에는 ['스타'를 꿈꾸던 경주 소녀, 심금을 울리는 가수가 되다]는 제목으로 가수 한혜진 씨와의 인터뷰가 소개되었다. 내용을 잠시 살펴본다. =
"그야말로 '트로트 열풍'이다. 주로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로만 치부되던 트로트가 요즘 전 연령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반기고 좋아하는 이들 중 한 사람이 가수 한혜진이다.
경주가 낳은 인기 트로트 가수이자 행사의 여왕, 여전히 현역으로 바쁘게 활동하는 가수 한혜진을 만났다. (중략) 그는 "트로트가 굉장히 어려운 장르이며 트로트 가수로 자리 잡기 까지 최소 10년은 걸린다는 각오하고 견뎌내야 한다"고 말했다.
"트로트 뿐 아니라 무명 가수는 설 수 있는 무대가 거의 없고, 노래를 부를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뛰어난 실력과 애절한 사연을 가진 후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선배로서 누구보다 기쁘고, 새로운 트로트 바람을 일으켜줘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
순간, 무명작가들 역시 출판사에선 아예 출판계약조차 안 해주고 있다는 현실이 떠올라 마음이 시렸다. 이에 격분한 지인은 손수 출판사를 차렸다. 덕분에 필자도 첫 저서를 그 출판사에서 가까스로 출간할 수 있었기에 지금도 무척이나 감사하다!
한혜진 씨 기사가 이어진다. = "가수 한혜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노래, 바로 '갈색추억'이다. 그의 첫 히트곡이자 가수 한혜진을 대중에게 각인시켜준 고마운 노래다. 그래서 '갈색추억'에 대한 추억도 남다르다. (중략)
"예전에는 앨범 하나 내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갔어요. 앨범을 낼 때마다 아버지가 고향 경주 땅과 밭, 집을 팔아서 제 뒷바라지를 하셨어요. 앨범은 계속 안 되었고 결국 6년 째 되는 해,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아버지가 과수원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앨범을 냈지요. 그 때 나온 노래가 '갈색추억'입니다. 이 노래가 성공하지 않았으면 우리 집은 망했을지 모르죠. 다행히 인기를 얻은 덕에 아버지에게 효도할 수 있었지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히트곡이 나오면서 가수로서 입지를 다졌다. 지금은 하나의 추억으로 웃으며 얘기하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 어렴풋이 느껴진다.(후략)" 이 부분에서도 최근 2쇄(刷)를 찍기 시작한 필자의 저서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가 오버랩되면서 동병상련으로 맘이 짠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세상이 당신을 공정하게 대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은 당신이 채식주의자라는 이유로 황소가 당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심리학 작가 데니스 홀리가 남긴 '명언'이다. 맞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온갖 야비함과 검은 음모까지 횡행하는 포악한 사회랄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을 보는 눈은 물론이요, 매사에 있어서도 옥석을 가릴 줄 아는 혜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매사 양보를 하고 착하게만 산다고 해서 복이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오히려 얕잡아보고 이용까지 당하기 십상이다. 철썩 같이 믿었던 지인에게 거액의 사기를 몇 번이나 당한 건 이런 주장의 뚜렷한 반증(反證)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전혀 믿지 말라는 주장은 아니다. 자녀도 믿는 만큼 자라는 거니까. 아무튼 사람은 평소 자강불식(自?不息)의 힘을 배양해야 한다. 내가 강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정복당하는 법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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