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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하나 허투루 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책 제목은 『광대하고 게으르게』지만 저자의 시선은 게으름을 모르고 광대한 세상을 향해 뻗어나간다. 서문도 맺음말도 없이 시작해서 게으르게, 불편하게, 엉뚱하게, 자유롭게, 광대하게, 행복하게라는 여섯가지 챕터 아래 날개를 펼친다.
저자는 한동안 전 세계 소셜미디어를 뒤흔들었던, 흰색-금색으로도 보이고 파란색-검정색으로도 보이는 한 장의 드레스 사진에서 19세기 사진의 발명 후 회화가 맞닥뜨렸던 도전에 응하였던 클로드 모네, 에드바르 뭉크, 파블로 피카소의 성취를 논한다. 탄생부터 결혼, 과거 급제 등 인생 단계를 여러 폭 그림으로 담은 전통 회화 「평생도」를 보며, 한국인 특유의 비교강박이 어디에서 연유하였는지 추측한다. 어린 시절 책에 '먹는 장면'이 나오면 침을 꼴깍 삼키던 기억으로, '먹방' 유행에도 고개를 끄덕거리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의 소박한 식사 장면과 비교한다. 예술로 세상을 보는 눈의 가시각을 최대화한 통찰이다.
한 편의 시 같다는 평을 받는 영화 「패터슨」을 보면서 난데없는 씁쓸함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일상의 작은 파문을 무사히 통과하는 주인공의 평화가 '190센티미터 가까운 키에 딱 벌어진 어깨를 가진 유럽계 인종 남자'여서 가능한 건 아닌지 생각한다. 여성인 자신이나, 자신보다 더 불리한 조건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무서운 공포의 결과가 남았을지 모른다는 분노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이 씁쓸함을 더 이상 과민해서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작은 사건 하나에서 사유의 폭을 확장하기도 한다. 한 교육청에서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으로 손을 들고 질문하는 학생의 사진을 보여주며 '잘난 척 하지 않기'를 제안했다가 비난을 받은 일이 있다. 저자는 이 사건에서 소위 '나대는 것'을 금기시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창의성과 다양성을 짓밟는 데다 나아가 자유 민주 사회의 어엿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책 속 글에는 과민한 촉수가 희망 쪽으로 산뜻하게 방향을 돌릴 때의 유쾌함이 있고, 불편한 이야기를 꺼리지 않는 목소리의 단호함에 통쾌함이 있다. 자기 객관의 눈으로 자신의 자리를 정확하게 보며, 눈물에 빠져 있지도 분노에 숨이 넘어가지도 않는다. 그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따듯한 연민과 타고난 자유에 대한 감각,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모든 예술에 대한 사랑이 녹아 있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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