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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헹구는데
수압이 낮아졌다
당신이 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당신이 손을 씻는 것이다
기쁜 상상은 그만두자
당장 눈이 매우니
―「수압」 전문
1995년 동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와 2019년 올해로 등단 24년을 맞은 시인 윤병무의 세번째 시집. 두번째 시집 <고단> 이후 6년 만에 찾아온 새 시집이다.
우주에서 은하로, 은하에서 태양계로, 태양계에서 지구로, 지구에서 한반도, 그리고 한반도에서 신도시의 동산까지 시인의 시선은 상상할 수도 없는 먼 곳을 바라보다가 현실의 공간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신발 한 짝이 공전"하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산 한 바퀴가 태양 한 바퀴면 좋겠"다고 바라는 시인의 마음은 곧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1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시간이 짧은 산책을 하듯 지나갔으면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에 시인은 "오래전 사라진 별의 빛"을 보여주고자 한다. 평론가 김동원은 해설에서 "우리가 힘겨워했으나 오래전에 사라진 과거 어느 순간의 삶이 어느 별의 행성에선 빛으로 반짝거릴 수 있다"는 말로 그 의미를 찾아냈다. 현실의 관점이 아닌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지금의 슬픔도 별처럼 반짝일 거라는 얘기다. 하여 "시인은 우리에게 가장 힘겨운 오늘을 지우고 '옛날'과 '훗날'만을 남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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