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청와대와 정부에 어렵다 호소해도 꿈쩍도 안 한다"고 했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공정위의 잦은 호출을 피해 일부러 해외 출장을 간다고 한다. "기업 의견을 듣겠다고 부르지만 실제론 일방적 지침이나 요구사항을 전하는 자리"라고 했다.
고용노동부와 환경부도 걸핏하면 영업 비밀에 가까운 자료를 쓸어간다고 했다. 기업인들 사이에선 '주투야압(晝投夜押)'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정부가 낮에는(앞에서는) 기업에 투자하라고 요구하면서, 밤에는(뒤에선) 압수수색을 한다'는 것이다.
삼성은 지난 1년간 150차례 넘게 압수수색을 당했다. 롯데·SK 등 다른 대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략) 곳곳에선 아우성인데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국무회의나 당청(黨靑) 회의에 가보면 소득 주도 성장과 친(親)노동 정책에 대해 다른 말을 하기가 힘들 정도로 완고한 분위기"라고 했다. (중략)
현 정부는 박근혜 정부를 '불통(不通) 정권'이라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지금 그 화살은 문재인 정부를 향하고 있다. (중략) 저잣거리 민심(民心)이 청와대 담장을 넘지 못하면 정권은 독선(獨善)에 빠진다. 이러면 정권도 국민도 불행해진다." =
조선일보 배성규 정치부장이 6월 17일자 [태평로]라는 칼럼에 쓴 '청와대엔 안 들리는 담장 밖 아우성'이란 글이다. 청와대 신임 정책실장에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임명됐다. 그는 "재벌들 혼내주고 왔다"는 발언으로 안팎에서 비판을 자초했다.
입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을 그는 몰랐던가? 위 칼럼을 소개했듯 작금 청와대의 '불통'은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다. 또한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 임명은 국민과 기업의 아우성은 안중에 없는 회전문 인사의 반복이라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승진'이랄 수 있는 김상조 정책실장 임명을 보면서 '읍참마속이 사라진 정치…'라는 생각에 마음까지 처연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는 뜻으로, 공정한 업무 처리와 법 적용을 위해선 사사로운 정을 포기함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다.
제갈량이 위나라를 공격할 무렵의 일이다. 제갈량의 공격을 받은 조예는 명장 사마의를 보내 방비토록 하였다. 사마의의 명성과 능력을 익히 알고 있던 제갈량은 누구를 보내 그를 막을 것인지 고민한다.
이에 제갈량의 친구이자 참모인 마량의 아우 마속이 자신이 나아가 사마의의 군사를 방어하겠다고 자원한다. 마속 또한 뛰어난 장수였으나 사마의에 비해 부족하다고 여긴 제갈량은 주저하였다.
그러자 마속은 실패하면 목숨을 내놓겠다며 거듭 자원했다. 결국 제갈량은 신중하게 처신할 것을 권유하며 전략을 내린다. 그러나 마속은 제갈량의 명령을 어기고 다른 전략을 세웠다가 대패하고 말았다.
결국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으며 마속의 목을 벨 수밖에 없었다. 엄격한 군율이 살아 있음을 전군에 알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미.중 무역전쟁이 가속화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전전긍긍(戰戰兢兢)과 사면초가(四面楚歌)가 현실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딱히 가이드라인도 내놓지 않고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수수방관(袖手傍觀)하는 모양새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뜻의 용어)의 파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무역(수출)으로 먹고 사는 나라인 까닭에 두 강대국 사이에서의 처신은 정부가 나서서 가시밭길까지 해결해줘야 마땅한 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마치 살기등등(殺氣騰騰)한 전선(戰線)에 나가는 자식이 죽든 말든 개의치 않겠다는 모습에선 차라리 경악까지 느껴질 정도다.
현 정부의 이른바 '소주성' 실패에도 변하지 않는 회전문 인사의 반복과, 심지어 승진과 영전으로까지 이어지는 '그들만의 리그'를 보자면 국민은 안중에 없는 오만함까지 그림자로 어른거린다. 그런 자리에 읍참마속이 존재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겠지만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