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여름이나 겨울방학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다섯 차례 정도 열었기에 그 동안 참여했던 지도자들이 모여 프로그램의 개선을 위한 경험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두 달 이상 매주 아이들과 함께 만나 두어시간씩 지내며, 작은 행동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챙기고 고민하던 사이여서 그런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이 매우 컸다.
"OO이는 어찌 지낼까요?" 각 시즌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아이들이 있었고, 잊혀지지 않는 행동들이 있었다. 바퀴 의자를 굴리며 놀이방을 온통 소란스럽게 하던 OO이, 첫날 문 앞에서 의자까지 들어와 앉는데 30분이 걸린 OO이, 장기자랑 시간에 뒤돌아 앉은 채 노래 부르던 OO이, 걸핏하면 울그락불그락, 삐침 대장 OO이, 펜 비트 재간을 감추고 있던 OO이, 술래가 되자 울어버리던 OO이,...
부모님이 정신과적 문제로 힘들 때, 어린 자녀들은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불확실하고 불안한 채 지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한부모가정이라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플 때 부모를 돌보아야하는 어려움까지도 자녀들의 몫이 되고 만다. 그러다보니 위축되고 자신감 없고, 때로는 산만하고 저항적인 행동들로 나타나기 쉽다.
그런데 초기 성장과정에서 겪는 불안이나 우울, 스트레스는 어릴 때만이 아니라 성인기의 또 다른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빠른 시기에 도와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환경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 상황을 이겨내고 보다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자녀들 개개인의 내적 힘을 강화해주는 것이 예방적이고 장기적으로 볼 때 더욱 바람직하다. 나름대로 잘 이겨낸 자녀들의 경우 이로 인해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맞는 개념이 회복탄력성인데, 이 개념은 극복력, 탄성력, 자아탄력성 등 여러 가지로 혼용되고 있으며 최근 들어 다양한 영역에서 많이 연구되고 있다. 어려움이나 역경을 이겨내는 개인 내적 힘이라고 정의하며,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습득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센터와 함께 계획하고 운영한 것이 아동의 회복탄력성 증진 프로그램이었다.
회복탄력성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세상을 보는 긍정성, 자기 조절, 대인관계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나 미술활동, 스토리텔링 등을 통해서 필요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코칭해주는 것이다. 사실 어떤 활동을 하느냐, 얼마나 잘 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일정한 시간에 만나서 인사하고, 그 동안 지낸 경험을 표현하고,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지키고, 또래와 팀이 되어 뛰고 놀면서 자기를 조절하고, 강점을 발견하고 인정해주며 서로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회복탄력성이 짧은 기간에 쑥쑥 자라는 것도 아니고 또한 증진되었다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기에 그 변화를 통계치로 측정하기란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바퀴 의자를 굴리며 소란을 떨던 아이가 올림픽게임 뒷정리를 완료하고, 들어오는데만 30분이 걸렸던 아이가 소리 높이 웃으며 먼저 장난을 걸고, 뒤돌아 노래부르던 아이가 눈을 마주치며 발표를 하며, 울그락불그락 삐지던 아이가 자기가 왜 화를 내는지 설명하고, 잘하는 것도 감추던 아이가 당당하게 자기 강점을 드러내며, 술래가 되자 울어버렸던 아이가 스스로 술래를 원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분명한 변화였다.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변화를 경험하는 동안 우리의 마음도 커졌다는 것이 우리 모임의 결론이었다.
당사자가 아니어서 관심 받지 못하고, 소수이어서 드러나지 않고, 목소리가 작아서 외칠 수 없는 이 아이들의 힘을 길러주는 지원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변화를 거치는 동안 생겨난 아이들의 꿈을 응원한다. 일러스트레이터, 농구선수, 경찰관, 선생님, 기타리스트, 등등등...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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