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인(한국작가회의 감사) |
우리 사회에서 쓰는 대표적인 말장난을 생각해 본다. 원자력 발전소, 근로자의 날, 보수 등이 떠오른다. 원자력 발전소를 핵발전소로 표현하면 어떤 감정이 들까. 원자력 발전소는 우리 집 앞에 있어도 크게 와 닿지 않지만, 핵발전소가 우리 집 앞에 있다고 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이라고 하면 어떤가. 벌써 어감 때문에 도끼눈을 뜨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근로자는 유순해 보이는데 노동자라고 하면 금방이라도 파업 창을 열 것 같다. 더 나아가서 태극기 부대니, 어버이 연합회니 하는 단체를 수구세력이라고 하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여기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반응이 그려진다. 이런 단체를 보수단체라고 하면 애국 이미지가 겹쳐진다.
혁명이니, 진보니, 보수니, 수구니, 반동이니 하는 말을 정치적인 용어로 가지 않고 철학적인 용어로 머물렀으면 어땠을까. 언어를 뜻 그대로 쓰면 좋은데 정치적인 옷을 입이니까 그 언어가 어용 사학자처럼 보여서다.
우리가 뉴스나 신문에서 흔하게 보는 단어들이고 그 뜻을 다들 알고 있는데 굳이 온도 차를 줄이려고 하는 것은 의도가 깔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상대방에게 뭔가 숨기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거나 받아들일 때 느슨한 마음이 들게 하기 위함이다. 언어를 있는 그대로 쓰는 것과 탈색을 시켜 쓰게 되면 읽는 사람은 그 언어의 표현에서 이미지가 달라진다.
태극기를 들고 매일 광화문을 찾는 사람들이나 정치 집회에 성조기나 이스라엘 깃발까지 흔드는 사람들을 일부 신문들은 보수라고 추켜세운다. 원자력 발전소는 되지만 핵발전소는 안 된다고 하면 언어 농단에 빠진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노동절 식장에서 현수막에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쓰여 있었다. 축사를 하는 장관을 소개할 때는 근로부 장관이 아닌 노동부 장관이라고 소개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다분히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언어를 쓴다면 그것은 나쁜 사람이다.
특히 정치적 의도를 넘어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언어를 통해 프레임을 만들고 그 프레임으로 자신의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경계할 대상이다.
정치인들의 막말 타령도 돌아보면 말장난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말장난이 먹히니까 독설을 넘어 막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말에 대해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몰라서 막말을 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밥 먹듯이 하겠는가.
광화문에서 매일 태극기를 든 분들에게 수구세력이나 반동세력이라고 하면 펄쩍 뛸 것이다. ‘내가 나라를 걱정해 힘든 시간을 쪼개 애국의 길을 걷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쌍욕을 할 수도 있다.
언어라는 것이 이렇게 본뜻은 같은데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시를 쓸 때마다 고민이 앞선다. 언어를 함부로 써서도 안 되겠지만, 말장난을 넘어 사익을 위한 언어를 뱉으면 독버섯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김희정 시인(한국작가회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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