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덕을 보다.' '선배 덕을 보다.' ' 친구 덕을 보다.' '동창 덕을 보다.' ' 조상 덕을 보다.'와 같은 말들이 그에 속하는 것이라 하겠다.
아무튼 이 말들의 최대공약수가, 정신적 물질적인 면에서 상대방의 혜택이나 은혜, 도움으로 자신이 이롭게 되거나 상황이 좋게 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으리라.
덕을 보아 얻는 결과는 자신의 상황이 좋아지고 유리하게 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덕 보는 것을 은근히 바라거나 기대하기도 한다.
혹자에 따라서는 안일한 마음으로 상대방에 의지하여 좋은 결과만 얻으려는 심리가 작용해서 세인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4년 전 내가 유성 중앙평생교육원에서 재능기부 차원의 봉사활동을 할 때 이야기이다.
나는 중앙평생교육원 연중 사업계획을 세우고 시행 운영 프로그램을 짜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유성구청으로부터 심사 승인을 받아야 할 날짜가 촉박하여 시간을 다투는 고심으로 신경을 써서 노작물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심사 승인만 받으면 될 정도 땀의 결실이 나오게 되었다.
중앙평생교육원 이사장은, 내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봐 왔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내심 무엇으로라도 보상을 좀 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으로 추측이 간다.
아니면, 위로 차원에서 바람이라도 쐬어 주고 싶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이사장이 대전시 근교 야외로 바람이나 쐬러 나가자고 말을 꺼냈다.
평상시에 볼 수 없었던 이사장의 호의라서 이의 없이 그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전시 교외 충북 들어가는 산기슭에 이사장의 농장이 있는데 거기에는 각종 여름 과일과 과수와 별장이 있으니 거기 가서 바람이나 쐬며 쉬다가 오자는 것이었다.
선뜻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사장의 가식 없는 마음인 것 같아서 이사장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조수석에 나를 태운 이사장의 차는 도심지를 가로 질러 교외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이사장의 운전 실력은 프로급이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를 여러 번이나 간담이 서늘하게 하였으니 정말 프로가 아니면 아무나 할 수 없는 운전 실력이었다.
쏜살 같이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승용차는 가양동 동부네거리까지 왔다. 좌측 깜빡이를 넣고 신호를 받아 좌회전을 하였다. 좌회전으로 돌자마자 전경이 차를 세웠다.
"귀하는 3차선에서 불법 좌회전을 하셨습니다. 운전 면허증 좀 주셔야 되겠습니다."
3차선에서는 좌회전을 못하게 된 것인데 그걸 위반한 것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사장과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전경은 운전대 잡고 있는 이사장한테 면허증을 내놓으라고 재차 재촉했다. 그러다가 그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를 흘낏 쳐다보았다. 혹시 남상선 선생님 아니시냐고 했다. 그렇다고 하니 유성고등학교에 근무한 적이 없느냐고 했다. 90년대에 근무했다고 하니까 자신은 그때 배운 유성고 제자라고 했다.
순간 전경의 태도가 돌변했다. 선생님 체면 생각해서 없었던 것으로 할 테니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라고 경고를 주는 것이었다.
이사장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밝은 표정으로 차를 몰았지만 나는 화끈 달아오른 얼굴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얼룩진 마음을 달래기가 어려웠다.
고맙다는 마음보다는 겸연쩍고 부끄러운 생각에 천 근 만 근의 중압감밖에 없었다.
교통법규 위반으로 범칙금을 내야 할 상황인데 제자 덕을 본 것임에 틀림없었다.
제자 덕을 본 것이 왜 그리 마음이 찝찝하고 개운치 않은지는 나도 모를 일이었다.
이사장은 남 선생님 제자 덕을 보았다고 너스레를 떨어가며 좋아했지만 나는 왜 그리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돌멩이 하나를 가슴에 매달고 어려워하는 찝찝함 그 자체였다.
형벌 같은 제자의 덕!
같은 상황의 일인데도 이사장의 마음과 내 마음은 왜 이리 다른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음이온과 양이온이 전해질만 달리했을 뿐인데 내 몫의 음이온은 왜 그리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떳떳하지 못한 음지의 그늘이 만들어낸 독버섯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지 말았어야 할 제자의 덕!
아니,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중압감으로 나를 어렵게 하는 형벌이었으리라.
아무리 삶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떳떳함으로 당당함으로 형벌 같은 제자 덕은 다시는 보지 말아야겠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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