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이름값하는 피해자의 몫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이름값하는 피해자의 몫

  • 승인 2019-06-23 10:24
  • 신문게재 2019-06-21 22면
  • 유지은 기자유지은 기자
m
여기 비슷한 카테고리의 두 사건이 있다. 사건의 과정과 결과에 집중하며 차이점을 비교해 보길 바란다.

첫 번째 사건. 그건 내가 딱 고3 때 일이다. 복도를 지나던 날 갑작스레 친구가 붙잡았다. 난 무슨 일이냐 물었고 친구는 뜬금없이 초등학교 동창의 이름을 꺼냈다. 오랜만에 듣는 이름. 몇 년 전까지도 가까웠던 사이로 방과 후 서로의 집에 곧잘 놀러 가곤 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친구의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친구는 흔히 말하는 몰카의 주인공이 돼 있었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복수극. A고등학교 누구로 인터넷에 떠다니던 영상은 내 눈앞에까지 흘러왔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신나하며 동영상을 돌려 봤고, 아마 평생 누군지도 모를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거다. 결국 친구는 졸업을 코앞에 두고 퇴학당했다.

두 번째 사건.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난, 오랜만에 대학교 후배를 만났다.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이 이야기 기사로 내주면 안 돼?"



친구의 이야기에 제목을 붙여보자면 이랬다. '의과대 화장실 몰카 사건.' 특이사항을 꼽는다면 피해 학생들의 몰카를 찍은 사람이 그들의 동기였다는 점, 그리고 그 학생이 미래에 의사가 될 것이라는 점. 학생들은 몰카범의 퇴학을 요구했지만, 학교는 1년여의 휴학처분만을 내렸다. 덕분에 그 몰카범은 학교에 복학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두 사건은 학생 그리고 몰카라는 단어로 함께 묶일 수 있다. 다만 첫 번째는 피해자, 두 번째는 가해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쪽은 퇴학, 한쪽은 휴학. 각자 마주했던 결과 역시 다르다. 그런데 그 결과가 예상을 빗나간다. 퇴학이란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였다.

사람들은 참으로 쉽게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사건 발생의 이유에 한 톨의 자의적 의지도 들어있지 않건만 자연스럽게 희생을 요구한다. 동시에 참으로 쉽게 가해자의 선처를 바란다. 눈물과 함께 한 사람의 인생을 구제해 달라 호소한다. 그러면서 이미 헤집어 놓은 피해자의 인생은 안중에도 없다. 피해자는 피해를 당한 사람이건만, 꼭 피해를 더 당해도 괜찮은 사람인 줄 안다. 피해는 피해자의 몫. '피해'자라는 이름값을 하는 세상이다.

모든 먼지를 단번에 빨아들이는 싹쓸이 청소기라던가 어디에 넣어도 맛을 내는 만능간장이라던가 세상엔 이름값을 하는 것들이 참 많다. 때때론 이것들이 이름값을 못한다며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러니 세상의 대부분은 제 이름값을 하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피해자만큼은 제 이름값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세상이 와야만 하지 아닐까.
유지은 기자 yooje8@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대, 공주대와 통합 관련 내부소통… 학생들은 반대 목소리
  2. 갑작스런 비상계엄령에 대전도 후폭풍… 8년 만에 촛불 들었다
  3. [사설] 교육공무직·철도노조 파업 자제해야
  4. 계엄 선포에 과학기술계도 분노 "헌정질서 훼손, 당장 하야하라"
  5. 충남도, 베이밸리 메가시티 추진 속도 높인다
  1.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2. [사설] 어이없는 계엄령, 후유증 최소화해야
  3. 대전·충남 법조계, "비상계엄 위헌적·내란죄 중대 범죄" 성명
  4. 윤 대통령 계엄 선포 후폭풍
  5. 전교조 대전지부 "계엄 선포한 윤석열 정부야말로 반국가 세력"

헤드라인 뉴스


韓 “계엄 옹호 않지만, 탄핵안 통과 안돼… 탈당은 재차 요구”

韓 “계엄 옹호 않지만, 탄핵안 통과 안돼… 탈당은 재차 요구”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5일 “국민과 지지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위헌적인 계엄을 옹호하려는 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윤 대통령의 탈당을 재차 요구했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이미 어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국민께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국민의 삶은 나아져야 하고 범죄 혐의를 피하기 위해 정권을 잡으려는 세력은 또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 대표로서 이번 탄핵은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는 4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국내 유망기업 7개 사와 1195억 원 규모 투자와 360여 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장우 대전시장과 정태희 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아이스펙 한순갑 대표 ▲㈜이즈파크 정재운 부사장 ▲코츠테크놀로지㈜ 임시정 이사 ▲태경전자㈜ 안혜리 대표 ▲㈜테라시스 최치영 대표 ▲㈜한밭중공업 최성일 사장 ▲㈜한빛레이저 김정묵 대표가 참석했다. 협약서에는 기업의 이전 및 신설 투자와 함께, 기업의 원활한 투자 진행을 위한 대전시의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신규고용 창출 및 지역..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이 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빠르면 6일부터 표결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본회의 의결 시 윤석열 대통령은 즉시 직무가 정지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은 이날 오후 2시 43분쯤 국회 의안과를 방문해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 탄핵소추안 발의에는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6당 의원 190명 전원과 무소속 김종민 의원(세종갑)이 참여했다. 탄핵안에는 윤 대통령이 12월 3일 22시 28분 선포한 비상계엄이 계엄에 필요한 어떤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