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사건. 그건 내가 딱 고3 때 일이다. 복도를 지나던 날 갑작스레 친구가 붙잡았다. 난 무슨 일이냐 물었고 친구는 뜬금없이 초등학교 동창의 이름을 꺼냈다. 오랜만에 듣는 이름. 몇 년 전까지도 가까웠던 사이로 방과 후 서로의 집에 곧잘 놀러 가곤 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친구의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친구는 흔히 말하는 몰카의 주인공이 돼 있었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복수극. A고등학교 누구로 인터넷에 떠다니던 영상은 내 눈앞에까지 흘러왔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신나하며 동영상을 돌려 봤고, 아마 평생 누군지도 모를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거다. 결국 친구는 졸업을 코앞에 두고 퇴학당했다.
두 번째 사건.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난, 오랜만에 대학교 후배를 만났다.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이 이야기 기사로 내주면 안 돼?"
친구의 이야기에 제목을 붙여보자면 이랬다. '의과대 화장실 몰카 사건.' 특이사항을 꼽는다면 피해 학생들의 몰카를 찍은 사람이 그들의 동기였다는 점, 그리고 그 학생이 미래에 의사가 될 것이라는 점. 학생들은 몰카범의 퇴학을 요구했지만, 학교는 1년여의 휴학처분만을 내렸다. 덕분에 그 몰카범은 학교에 복학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두 사건은 학생 그리고 몰카라는 단어로 함께 묶일 수 있다. 다만 첫 번째는 피해자, 두 번째는 가해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쪽은 퇴학, 한쪽은 휴학. 각자 마주했던 결과 역시 다르다. 그런데 그 결과가 예상을 빗나간다. 퇴학이란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였다.
사람들은 참으로 쉽게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사건 발생의 이유에 한 톨의 자의적 의지도 들어있지 않건만 자연스럽게 희생을 요구한다. 동시에 참으로 쉽게 가해자의 선처를 바란다. 눈물과 함께 한 사람의 인생을 구제해 달라 호소한다. 그러면서 이미 헤집어 놓은 피해자의 인생은 안중에도 없다. 피해자는 피해를 당한 사람이건만, 꼭 피해를 더 당해도 괜찮은 사람인 줄 안다. 피해는 피해자의 몫. '피해'자라는 이름값을 하는 세상이다.
모든 먼지를 단번에 빨아들이는 싹쓸이 청소기라던가 어디에 넣어도 맛을 내는 만능간장이라던가 세상엔 이름값을 하는 것들이 참 많다. 때때론 이것들이 이름값을 못한다며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러니 세상의 대부분은 제 이름값을 하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피해자만큼은 제 이름값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세상이 와야만 하지 아닐까.
유지은 기자 yooj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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