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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머니 속의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안정효 옮김│민음사
'내가 얼마나 깐깐했으며 우리 사정이 얼마나 나빴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일을 하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 사람은 힘겨운 가난을 크게 꺼리지 않는다. 나는 욕실과 샤워와 수세식 화장실이라면 우리들보다 열등한 사람들이나 누리는 무엇이거나 여행을 다닐 때만 기대하는 사치라고만 생각했으며, 우리들은 여행이라면 자주 다니는 편이었다.' -『호주머니 속의 축제』에서
두터운 스웨터를 입고 있는, 입을 굳게 닫은 채 무언가를 뚫어보려는 듯 응시하는 남자. 모진 풍파를 겪고 난 뒤 세상을 관조하는 것 같은 얼굴이다. 『노인과 바다』의 표지 사진으로도 익숙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헤밍웨이의 모습은 전쟁 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 스페인 내란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잘 어울린다. 하드보일드한 문체와 현실에 핍진한 주제. 헤밍웨이의 이미지는 거친 노인에 가깝다.
산문집 『호주머니 속의 축제』에는 헤밍웨이의 청춘이 담겼다. 아무 가진 것 없는 젊은이, 그러나 두 손이 빈 만큼 그 손에는 어떤 막중하고 무겁고 고귀한 것도 담을 수 있는 잠재력과 꿈이 가득한 시절이었다.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몇 해 전에 쓴 이 수기에 '축제'라는 이름이 붙은 건 젊음을 향한 예찬 때문일 것이다. 젊은 시절은 순간 찾아온 행운처럼 짧지만 기억으로서 평생을 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짊어지고 한평생 가야 할 '추억'이 된 뒤에는 호주머니 속에 넣어둔 것처럼 언제든 툭 튀어나와, 늙은이를 장난스럽게 괴롭힌다.
책에는 글쓰기를 도구로 헤밍웨이가 한평생 좇았던 인간 존엄에 대한 애정과 경의가, 특히 가족과 몇 동료 예술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와 감정이 절절하게 스며 있다. 어디에나 나무가 심겨 있어, 계절의 흐름을 육안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파리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난하고 젊은 문학가의 산책과도 같은 산뜻한 생활기는 책장을 넘기는 우리 여행자 겸 생활자 모두에게 아련한 향수와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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