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선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전쟁 중 북에서 남으로 온 실향민들이 겪는 가난을 배경으로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사회현실을 제대로 그려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택시를 탄 주인공 철호가 아이를 낳다 죽은 부인이 있는 병원으로 갈 것인지, 은행 강도 행각을 벌이다 붙잡힌 동생이 있는 경찰서로 갈 것인지를 정하지 못해 헤매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명연기입니다. 여기에 정신분열증에 걸린 주인공의 노모가 "가자, 가자" 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장면도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이 작품은 유현목 감독이 제작비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2년 넘게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촬영해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나리오가 더욱 탄탄해졌고, 편집 등 후반기 작업에도 공을 들여 매우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김진규, 최무룡, 문정숙, 엄앵란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이 거의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하여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발탄>은 오랫동안 평론가들이 한국영화 최고의 작품으로 꼽아왔습니다. 마치 <시민케인>(1941)이 세계영화사상 최고작으로 일컬어진 것과 비슷합니다.
1960년대는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직 텔레비전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었으므로 영화는 라디오와 함께 대중문화의 양대 축이었습니다. 한 해 200편 넘게 영화가 제작되면서 창작 시나리오의 부족, 일본 영화 번안물의 범람, 신파조의 정서적 과잉이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오발탄>은 사회 현실의 문제를 담아내면서 세련된 영화 기법을 보여준 획기적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영화는 4·19 혁명의 덕을 본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자유당 정권이 계속되었다면 치열한 사회 고발을 다룬 이 영화는 검열로 인해 상영 금지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전후 암담한 현실과 희망 부재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60년 전 한국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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