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더위를 못 참은 아내는 찬물로 목욕을 시작했다. 딸의 해산(解産)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오신 장모님께서는 혀를 차셨다. "너, 그러다가 이담에 골병 든다." 장모님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가뜩이나 고삭부리(몸이 약하여서 늘 병치레를 하는 사람)인 아내는 지금도 8월이면 더욱 골골거린다. "하지만 당시엔 어쩔 수 없었어! 냉수로 샤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거든." "......!!"
아들을 봤을 당시, 대한민국 인구정책은 나무만 봤지 정작 숲은 간과하는 청맹과니(사리에 밝지 못하여 눈을 뜨고도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주먹구구였다. 둘도 많다며 자녀는 하나만 낳으라고 강조했다.
성실하게(?) 그 말을 좇아 아들 하나로 만족코자 했다. 그러나 홀아버지께서 돌연 타계하시는 변괴가 발생했다. 엄동설한에 장례를 치르고 나니 가뜩이나 외롭던 마음에 한풍(寒風)이 더욱 들어찼다. "여보, 우리 아이 하나만 더 낳자!"
아내를 설득하여 4년 뒤 1월에 딸을 보았다. 그 딸이 아들과 함께 우리 집안에 웃음과 기쁨, 만족과 행복의 화수분으로 작동했다. 오빠에 뒤질 세라 툭하면 학교서 상장을 받아왔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교 1등을 독주했다.
'똑똑한' 서울대학교 입시관계자가 이런 미래의 동량(棟梁)을 놓칠 리 없었다. 서울대 수시모집으로 당당히 장학생으로 합격한 딸은 동(同) 대학원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재원(才媛)의 딸을 같은 대학 출신의 사위가 아내로 입도선매(立稻先賣)했다. 딸은 지난 1월에 외손녀를 선물했다. 한데 외손녀의 생일 역시 딸과 같은 1월이다. 이제 겨우 생후 다섯 달이건만 벌써부터 책에 욕심을 내는 걸로 보아 녀석도 제 엄마 아빠의 DNA를 닮았지 싶다.
아내는 그래서 "우리 외손녀는 장차 하버드 대학까지 갈 재목(材木)"이라며 입에서 침을 튀긴다. 딸에 이어 아들도 8월이면 '아빠'가 된다. 그런데 아들 또한 딸과 마찬가지로 손자의 생일이 아들과 같은 8월이기에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막상막하(莫上莫下)이자 와룡봉추(臥龍鳳雛)랬다고 아들 역시 딸을 뛰어넘었다. 아들은 대학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순위로 꼽는 글로벌기업의 과장이다. 회사에서도 인정받아 올 초부터 서울대에서 특별교육을 받았다.
어제 마침내 교육을 마치면서 우수상까지 받았다는 전갈이 왔다. 그 상장을 인증샷(認證shot)으로 받곤 너무도 고맙기에 한참을 울었다.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중학교조차 갈 수 없었던 박봉의 경비원 아들이 그예 일을 냈구나!
고유정이라는 여자의 악행이 세인들에게 경악을 몰고 왔다. 고운 이름과 달리 악녀(惡女)에 다름 아니었던 그녀는 [고유정 현 남편 "아들 살해된 것 같다" 고소장 검찰 제출]이라는 뉴스를 낸 머니투데이의 6월 14일 자 보도와 같이 현 남편에 의해 의붓아들 살인죄 혐의로까지 고소당했다.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36)은 그 죄만으로도 사후(死後) 지옥행이 뚜렷하다. 한데 이번엔 지난 3월 2일 숨진 채 발견된 A씨의 친아들 B군(4)을 살해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니 이쯤 되면 진짜 악마가 따로 없는 셈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그간 전 남편 살해 및 시신훼손·유기 과정이 고유정의 치밀한 사전 계획에 의한 범죄로 보이는 정황이 수사로 밝혀지면서 의붓아들 사망도 고유정과 관계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왔다고 한다.
친아들(딸)이든 의붓아들 역시 사랑과 칭찬으로만 길러야 마땅하다. 당연한 상식이겠지만 자녀는 애만지며(애만지다 =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 어루만지다) 길러야 이를 본받아서 자신의 자녀에게도 사랑으로 보답한다.
여하간 8월에 만나게 될 손자 또한 제 아빠와 엄마를 닮을 터다. 손자와 손녀가 제 아빠와 엄마 이상으로 공부 잘하고 사물에 대한 애정(愛情)과 효심(孝心), 예의까지 깍듯하길 기도한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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