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계족산 여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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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계족산 여름 이야기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승인 2019-06-17 10:01
  • 신문게재 2019-06-18 23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권득용_2018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6월은 일 년 중 야생화가 가장 많이 피는 계절이지요. 지구상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37만여 종이라 보고됐지만 얼마나 더 많은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지는 신(神)만이 알 수 있는 영역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계절 따라 피는 꽃들이 아름답다고 찬탄하지만 기실 그 꽃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꽃 이름을 알려주는 어플로 누구라도 손쉽게 꽃 이름을 검색할 수 있어 참 편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꽃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주며 행복과 감사의 메신저가 되어 마음에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지요. 꽃의 역사는 인류문명보다 훨씬 이전으로 '사람이 꽃이다'라는 말처럼 늘 우리들의 삶과 함께한 보배로운 존재임에 틀림 없습니다.

계족산 소류지를 지나면 지금 밤꽃이 한창입니다. 진한 에로티시즘(eroticism)의 그 밤꽃 향기는 벌 나비 등의 곤충을 유혹하기 위한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사람들은 밤꽃을 두고 설왕설래합니다. 밤꽃 향기는 남정네의 거시기한 냄새와 똑같은 스퍼민(spermine)이 있어 예부터 부녀자들은 밤꽃이 필 때는 바깥출입을 삼가라고 했다지요. 꽃의 시각적인 덕성보다는 후각적 감성의 호르몬을 뒤흔드는 향기에 밤새 잠못 이룬 뻐꾸기가 계족산의 아침을 깨우고 있습니다. 사실 뻐꾸기는 곡식을 파종하는 시기에 운다고 해서 한자로 '씨를 뿌려라'는 의미의 포곡(布穀)이라 부르지요. 중국식 발음이 푸구(뿌꾸)니까 뻐꾹이라 들리며 문장가 권필(1569~1612)은 임진왜란 당시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에 나가 농사지을 사람이 아녀자뿐이라 비통함으로 서둘러 씨를 뿌리자는 '포곡'이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계족쉼터를 지나 봉황마당까지 이어지는 동춘당 생애길은 벚나무, 메타스콰이아, 산목련, 이팝나무, 단풍나무 길이 조성되어 이맘때면 녹음이 무성합니다. 해마다 계족산 임도에는 금계국이 만발하여 상쾌함으로 다가왔는데 올해는 자생하는 꽃이나 풀을 선별하지 않은 채 예초기로 깨끗하게 밀어버려 꽃을 만날 수 없습니다. 안타까움과 헛헛함이 밀려왔지만 가까이에서 이름부터 듣기 민망한 '홀딱벗고' 새가 운율을 맞추고 있습니다. 게으르고 밥만 축내던 스님이 환생하였다는 이놈의 본명은 검은등뻐꾸기지요. 대부분의 새들은 단음이거나 두음의 소리를 내지만 이놈은 '미미미도'의 음계가 정확해 듣는 사람에 따라 묘한 감정으로 웃음을 줍니다. 봉황마당에서 임도 삼거리를 오르는 등산로는 지금 보수공사가 한창입니다. 423m 계족산에 등산객들의 편리를 위한다고 콘크리트 기초와 각관으로 정비하는 것이 근사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연환경과의 조화로움을 상실한 것 같아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일런지요.

호국보훈의 달 개망초꽃이 민초들의 함성으로 피어난 계족산은 벌써 하지감자가 꽃이 지고 마늘종을 뽑는 노부부의 아침이 분주합니다.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하는 6월이 야생화로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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