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반지하방, 안전한 공생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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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반지하방, 안전한 공생의 출발

이준원 바이오·의생명공학과 교수

  • 승인 2019-06-10 08:34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이준원 교수
이준원 교수
서울 2호선 아현역 인근에 지금은 아파트로 변했을 반지하방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 방 하나 한켠에 화장실이 있는, 지금은 상상도 안 되는 울퉁불퉁한 벽 사이로 밤이 되면 중국에서 건너온 듯한 커다란 바퀴벌레가 기어 나오던 곳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외국인들의 눈에 보였을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신계급주의 사회에 대한 강렬한 풍자가 힘을 발휘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하고 왠지 모를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까닭은 내가 처했던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겪어보지 않았을 반지하방의 낯섦이 어떤 상상력을 느끼게 했을지, 20대 학생들이 이 영화를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몹시 궁금하다.

언론 발표를 보면, 경제적 수입이 많은 계층은 진보를 많이 지지하고 취약계층은 오히려 보수를 지지한다고 한다. 사회적 취약 계층이 경제적으로 우월한 계층보다 지금 그대로 현상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하실에 살았던 또 다른 부부는 반지하방에 살았던 가족보다 더 취약한 삶을 살고 있지만 4년 3개월 17일 동안 살았던 그곳이 편하니 계속 살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가장 고통받고 살았던 그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고 바꾸려 하지 않고 안주하려고 한다는 모순된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자신의 이익과 관계없이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는 편이 감정적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지하방에 살던 아버지는 항상 아들에게 '넌 계획이 있구나' 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결국은 무계획이 가장 좋다고 말하고 다시 지하실로 들어가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본인이 계획한 일에 대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순응과 독창성을 발휘하는 길이 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창의적인 학생들을 ‘말썽꾸러기’로 규정하고 순응하도록 가르친다. 세상의 많은 창시자, 혁신가들은 자신을 믿고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의 불확실성에 개의치 않고 위험을 뚫고 전진하려고 했다. 위대한 기업가들은 최소한의 위험을 가지도록 관리했고 자유로운 기질을 가지도록 직원들을 격려하고,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을 모두 끌어안고 계속적인 시도를 하도록 자극했다.

인간의 장내에 서식하는 공생 미생물의 입장에서 보면, 둘 사이에서 인간은 상대적인 이익을 더 취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생충(Parasite)은 '다른 이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사람'으로부터 기원했다. 자신의 생장과 번식을 다른 생물체에 의존하는 기생 생물은 숙주에 손해를 입히거나 죽일 수도 있으나, 숙주에 문제가 생기면 기생 생물의 생존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오래전부터 인간의 유전자에 삽입되어 진화되어온 바이러스 유전자는 인간이 상대적인 우월한 형태를 가지게 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공생과 기생의 의미를 구분하려 하는 생태적 관계와 의학적 분류에서 벗어나 지구 상에서 함께 존재하는 생존의 형태로 보아야 한다.

'설국열차'와 '기생충'에서 보여준 봉준호 감독의 신계급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은 기생하는 생물로 분류될 수도 있는 다른 계층의 인간을 같이 살아가는 공생의 관계로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했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구분될 뿐 인간은 선과 악이 아닌 동일한 생물체로 표현하고, 반지하방 가족들에게 느껴지는 '냄새'로 규정되는 생리학적 거부감은 인간의 존엄이 망가지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커다란 돌로 무참하게 머리를 맞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아들이 돈을 많이 벌어 아버지가 기거하고 있는 지하실을 가진 높은 곳의 집을 소유하기 위해 잠시 꿈꾸는 것처럼, 이 사회가 안전망이 잘 갖춰진 독창적이고 열린 곳이 되길 기대해본다.

/이준원 바이오·의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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