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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 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의 정치사
에리카 밀러 지음│이민경 옮김│arte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의 마음은 어떨까. 수술 전에는 두려웠으며 수술을 마친 뒤엔 애통하면서 수치스러웠을까.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음에 무한한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젠더학자 에리카 밀러는 임신중지운동사를 연구하며 우리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임신중지에 관한 생각과 이미지가 친임신중지와 반임신중지 운동의 부침 속에 만들어진 정치적 산물임을 발견한다. 『임신중지』에서 그는 1960년대 촉발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임신중지 운동사를 탐색하며 '사회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고통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을 '모성적 행복', '애통함', '수치', '공포'라는 특정한 감정으로 점철시키는 획일적인 임신중지 서사를 조명한다.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계급, 인종, 장애에 대한 차별, 젠더권력과 성차별적 정치 역학을 파헤친다.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되는 '들어가며' 첫 페이지에 소개된 아멜리아 보노라는 여성의 글은 그 정치적 산물에서 벗어난 정직함을 보여준다. '일 년 전쯤 매디슨가에 있는 가족계획협회에서 임신중지를 했다. 나는 이 경험을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한 일로 기억한다. (…) 여전히 '좋은 여성'에게 임신중지란 슬픔, 수치, 후회를 동반하는 경험이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나도 선량한 사람이다. 그러나 임신중지는 내게 상상 이상의 행복감을 안겨 주었다. 엄마가 되도록 강요받지 않을 수 있다는데 행복하지 않을 까닭이 있겠나.'
지난달 미국 미주리주에서는 임신 8주가 지나면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임신 여성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이 있을 때는 예외로 한다고 했지만, 성폭행 피해로 임신했을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앨라배마주에서는 임신기간 전체에서 임신중지가 금지됐다. 시술을 한 의사는 최고 99년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잇단 강경 낙태금지법에 여성들은 반발하며 온라인에 #유노미(#YouKnowMe) 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투 운동처럼 그동안 밝히기 어려웠던 낙태 경험을 당당하게 밝히거나 고백을 지지하는 의미다. 배우 자밀라 자밀은 "낙태는 당시 나의 정신과 신체 건강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는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라도 낙태를 해야 한다면, 당신 역시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 앰버 탬블린도 '유노미' 해시태그를 달고 "2012년 낙태를 했는데 가장 어려운 결정 중 하나였지만 그 때 당시 나에겐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책의 원제 'Happy abortion'처럼 행복한 임신중지를 말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에 이 책이 소개되는 지금, '낙태죄'라는 '죄목'을 법문에서 지워 내고, '임신중지'라는 말로 이 경험을 표현하는 데까지 우리는 와 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임신중지 앞에 여전히 따라 붙는 '수치스러운', '후회되는', '끔찍한'이라는 수사를 지워 내는 것이다. '행복한'을 비롯해 '구원받은 듯한', '감사한', '후회 없는'으로 말해지는 임신중지 경험을 주저하지 않고 나눌 토대를 만드는 데에서 임신중지에 대한 실질적이고, 입체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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