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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부희령 옮김│더봄
'살인은 강자의 무기이다. 반대로 죽음은 약자의 무기다. 약자는 살해할 능력이 없다. 약자의 가장 큰 힘은 강자들보다 더 많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리자의 관점에서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5만 8000명 가량의 인명 손실을 입었고, 한국은 5000명 정도를 잃었다. 반면에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공식적인 전쟁 기간 동안 약 4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본문 중에서
책에서 주제로 삼은 전쟁에는 이름이 없다. 내내 '그 전쟁'이나 '나의 전쟁'으로 불리는 전쟁은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이라고 말하고, 베트남에서는 '미국 전쟁'이라고 일컫는 전쟁이다.
그 전쟁 직후 베트남과 미국 사회의 이면을 이중간첩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 소설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비엣 타인 응우옌의 논픽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전쟁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며 윤리적 질문을 제기한다.
'모든 전쟁은 두 번 치러진다. 처음에는 전쟁터에서 싸워야 하고, 두 번째는 기억 속에서 싸워야 한다'. 전쟁에 대해 진정으로 성찰하지 못하면 자기 민족의 경험만을 떠받들고, 자기 민족의 희생을 드높이면서 적을 악마로 만들거나 반대편 진영의 희생자들을 무시하게 된다.
역자가 강조한 것처럼 '공정한 기억이 이뤄져야 공정한 망각도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베트남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베트남인을 치유해야 할 몫이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제5장에서 저자는 '대한민국이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베트남인이 한국을 생각하는 속마음'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한국 땅에서 일어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핑계로 이 '기억전쟁'을 외면할 수 있을까.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출신 여성은 10만명에 달한다. 한국전쟁이 휴전한지는 7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불공정한 망각은 반드시 기억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잊고 싶은 기억일수록 제대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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