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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는 따뜻해. 밥이 말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이야. 구름과 파도와 조개와 사람들이 걸어간 발자국도 따뜻해. 이 유리병을 좀 만져 봐. 해변의 모든 것이 다 따뜻하다구. 이토록 따뜻한 해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그건 모르겠지만. 다른 밥이 말했다. 모래는 정말 따뜻해.
뜨거운 모래를 밟기 위해 한낮의 해변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해변엔 언제나 저런 사람들이 있지. 무척 행복하고. 처음의 밥이 말했다. ' ―「부드러움들」 중에서
여성민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부드러움과 해변의 신』에는 밥(Bob)이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부드러움들」에는 두 명의 밥이 나와 해변을 산책하며 때때로 모래 위에 누워 있거나, 조개껍질을 줍거나, 꽃을 들고 해변에 서 있는 남자에 대한 대화를 한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날이 저무는 것. 날이 저물어 하늘과 바다의 경계, 그리고 바다와 백사장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다.
"이건 다섯 사람의 밥에 관한 이야기"라고 시작되는 「밥(Bob)」에서는 결국 단 한 명의 밥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인물들은 대상을 확정짓고 경계를 두르는 일에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유희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밥이라는 사람들은 책을 덮은 뒤 우리가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 어려울 만큼 성격이 모호하다. 그러나 밥이 거닐었던 길과 만났던 사람, 널뛰는 생각과 엉뚱한 고뇌는 페이지 너머 생생하게 공감된다. 읽다보면 어느새 책에서 느껴지는 모호한 불안쯤은 당연한 것으로, 당연해서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것으로 바뀐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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