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 합니다. 그러니 소소한 개인들이 저 지독한 고통과 슬픔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영화를 통해 드러나고 취급되는 그들의 삶은 성찰과 의문을 요구합니다.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2006)과 많이 흡사합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인간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이 비극적인 상황을 만납니다. 가족을 잃고, 남은 이들은 슬픔을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이 상황을 희극적으로 그려 더 비극적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작품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방식에서 더욱 비슷합니다. 거대기업 계열사가 투자, 배급하고, 그들이 운영하는 수많은 상영관에서 와이드 릴리즈 방식으로 관객을 모읍니다. 가난한 이들의 슬픔을 팔아 돈을 벌고, 상을 받습니다. 잔인한 자본의 논리를 봅니다. 세탁소와 동네 슈퍼마켓과 용달차 화물 배달, 서점, 식당, 빵집들이 대기업들의 사업 확장에 밀려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둡고 슬프고, 인간다움을 잃고, 고통스럽게 남의 삶에 기생하며 사는 이들의 모습과 이 영화는 대단히 이율배반적입니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목도합니다. 저렇게 사는 이들도 있구나. 참 고통스럽구나.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 칸 영화제 그랑프리 작품에 대한 호기심에 극장을 찾고, 대기업이 돈을 버는 과정에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영화는 말미에 불빛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 역시 <괴물>의 마지막 장면과 닮았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는 과연 아버지에게 도착했을까요? 우리는 압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향해 쓴 애절한 말들 말입니다. 깊은 어둠 속 가느다란 울음 같은 불빛이야말로 우리를 향해 호소하는 영화의 메시지인지도 모릅니다. 호우 속에 수많은 계단을 맨발로 내려와 물에 잠긴 셋방을 바라보던 기택의 슬픈 얼굴을 생각합니다. 전시된 슬픔이 얻은 명성과 흥행에 대해 슬프게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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